[사순 제2주간 목요일]부자와 라자로 (루카 16,19-31)

2019. 3. 21. 오전 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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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2주간 목요일]부자와 라자로 (루카 16,19-31)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고 한다. (예레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하시며,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은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는다고 하신다. (루카 16,19-31)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17,5-10)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도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7~8)


앞의 예레미야서 17장 5~6절에서는 사람의 힘을 의지하며 주님을 떠난 자에게 내릴 저주가 선언되었다.


이제 예레미야서 17장 7~8절에서는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에게 내릴 복이 선언된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할 때 복을 받을 사람과 저주를 받을 사람의 차이는 한 가지다. 복을 받을 사람은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서 17장 5절의 본문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서 그의 신뢰가 되는 그 사람은'이다.


여기서 예레미야서 17장 5절의 후반부 문장의 주어'주님''예흐와'(yehwa)이며, '그의 신뢰'에 해당하는 '미브타호'(mibtaho; whose confidence; whose hope)'의뢰', '의지', '신뢰'(시편40,4),

'희망'(시편71,5) 등으로 번역되는 '미브타흐'(mibtah) 3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리고 이 명사는 '의지하다'라는 뜻의 동사 '빠타흐'(batah)에서 유래한 명사로 그 의미는 동사와 같다.

따라서 예레미야서 17장 7절은 한 어근을 중복적으로 사용하여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축복을 받을 사람은 오로지 주님만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구절과 대조되는 예레미야서 17장 5절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사람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고, 군대나 군사력이 아닌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그 마음이 주님만을 향하여 있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저주 받을 사람 '사막의 덤불'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축복 받을 사람의 상황예레미야서 17장 8절에 진술되고 있다.


'광야의 메마른 곳', '인적 없는 소금 땅'(예레17,6) 즉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서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무더위''가문 해'에 그러한 곳의 삶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무더위''가문 해' 아무런 고통이나 걱정을 안겨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서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1,3)고 했기 때문이다.


한편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에서 '두려워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례' (yare)예레미야서 17장 6절'보다'라는 뜻의 동사 '라아'(raah)와 함께 예레미야서에 자주 사용되어 언어 유희(word play)를 보여주고 있다.


저주 받은 사람은 좋은 일(예를 들면, 저주의 끝)이 찾아들어도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축복 받은 사람은 가뭄(저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뭄이 올지라도 생수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그의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의 대조유사음을 지닌 두 히브리어 '야레'(yare)'라아'(raah)언어 유희를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6,19~31)


"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4ㄴ~26)


살아 생전에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 있었던, 자기 대문 앞의 거지 라자로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부자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주제넘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멸시했던 라자로를 통해 물 한 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한다.


차마 많은 것을 청하지 못하고 손가락 끝에 찍은 물을 구하는 부자의 상황과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된다.

지상에서 호의호식하며 배불리 먹던 부자는 이제 물 한 잔도 아닌 말라붙은 혀를 식힐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특히 '식히게'로 번역된 '카탑쉭세'(katapsykse)뜨거워 메말라버린 혀를 식히고 촉촉하게 해달라는 뜻으로서 부자가 처해있는 곳이 얼마나 뜨겁고 견디기 힘든 곳인지 보여 준다.


살아 생전 거지 라자로를 쳐다 보지도 않았던 부자가 이제 자신의 비참한 처지로 말미암아 라자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상황이 역전된 현세와 내세와의 자리바꿈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는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데, 부자가 왜 물 한 방울을 구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그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오뒤노마이'(odynomai) '몹시 아프게 하다', '몹시 괴로워하다', '몹시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오뒤나오'(odynao) 현재 수동태로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계속적으로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의 상황을 보여 준다.


이 고통은 절대자 하느님의 심판에 의한 고통이며, 여기서 불길은 죄인의 최종적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묵시19,20; 20,10; 21,8).


현세에서 매일 잔치를 벌여 사치와 쾌락을 일삼았던 부자는 죽음과 동시에 헤어날 수 없는 심판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져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애타게 부른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라자로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루카 복음 16장 25절에서 아브라함은 애걸하는 부자의 청원을 들어줄 수 없음을 설명한다. 

'좋은 것들'로 번역된 '아가타'(agatha)의 원형 '아가토스'(agathos)'선한', '유익한', '아량있는'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부자가 받은 '좋은 것들'살아 생전 그가 누렸던 부와 명성을 말하며, 동시에 그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배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온갖 부와 명성과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부자는 현세에서 '주는 것'에 무관심했고,  오로지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보면 된다.

 

아브라함은 서로 통교할 수 없는 공간상의 제약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을 때 고통받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의 악함 때문에 부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위로를 받고'에 해당하는 '파라칼레이타이'(parakaleitai; he is comforted)'~곁에', '~가까이'라는 뜻이 있는 접두사 '파라'(para)'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칼레오'(kaleo)의 합성어로서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 있지만, 본 단락에서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파라칼레오'

(parakaleo)의 현재 수동태이다.

이것은 라자로가 계속적으로 외부로부터 위로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느님(욥기15,11; 즈카1,17)으로부터 오는 완벽한 위로인 것이다(2코린1,3.4).


한편, 루카 복음 16장 2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부자의 애절한 청원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우리와 너희 사이'란 결국 저승과 낙원 간의 간격을 말한다.

'구렁'으로 번역된 '카스마'(chasma; a gulf; a chasm)'길게 갈라진 틈', '심연'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구렁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보다는, 지옥과 천국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질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가로 놓여 있어'로 번역한 '에스테릭타이'(esteriktai; there is fixed)'흔들리지 않게 하다', '강화하다', '확고히 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테리조'(sterizo)의 완료 수동형으로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그 구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 누구도 그것을 옮기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죽은 후에 처해진 운명은 아무도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나타내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이와 달리 라자로는 가난할 뿐만 아니라 종기투성이의 몸을 가진 사람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둘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부자는 고초를 겪게 되고,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자가 왜 고초를 겪고, 라자로가 왜 위로를 받는지 간략히 설명하십니다.

부자는 살아 있는 동안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공평한 분이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불의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에 눈이 멀면 하느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불의한 재물을 쌓아놓지 말고, 그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래야 나중에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그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일 것입니다(루카 16,9-12 참조).
그런데 오늘 복음의 부자는 라자로의 곤궁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재물을 가지고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라자로는 자신의 종기 고름마저도 개의 먹이로 나누어 주며 오직 주님께만 신뢰를 두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는 철저한 가난함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이 라자로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부유하게 살던 그 부자의 이름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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