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화요일]벳자타 못가 병자 치유 (요한 5,1-16)

2019. 4. 2. 오전 5: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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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화요일]벳자타 못가 병자 치유 (요한 5,1-16)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는 것을 보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 (에제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던 병자를 고쳐 주신다. (요한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에제47,1~9.12)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8)


에제키엘서 47장 8절주님의 집(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그 바다를 살릴 것이라고 천사가 에제키엘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천사는 그냥 '물'이라고 하지 않고 '이 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물'에 해당하는 '함마임 하엘레'(hammaim haelleh)에서 정관사와 지시대명사가 결합된 '하엘레'(haelleh; these)와 더불어 '함마임'(hammaim; water)에도 정관사 '하'(ha)가 있다.


이것은 사해 바다를 살릴 물이 에제키엘서 47장 1절에서 묘사된 주님의 집 (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고, 또한 에제키엘서 49장 7절에서 묘사된 강가에 수많은 매우 질이 좋은 나무들을 만들어낸 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천사가 강조하는 것은 단지 죽은 바다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기적을 일으킨 그 물이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사실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이 물'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땅을 하느님의 첫 창조와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의 축복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물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드러내는 '이 물'하느님께서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백성들이 하느님을 떠나게 했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났음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하느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을 상징하는 '화해의 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물은 백성들이 돌아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먹기에 좋은 열매와 약재료가 될 만한 푸른 잎과 풍부한 고기(수자원)를 보장하는 축복의 물이요, 생명의 물이다.

즉 에제키엘은 '이 물'축복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구약 성경의 일반적인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공존하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강조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 '이 물'은 창세기 2장 9~17절에서 묘사된 에덴에서 발원하여 생명 나무를 비롯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한, 첫 창조의 동산에서 흘러나온는 물의 개념과 관련된다.

또한 에제키엘서에서 제시되는 '이 물'요한 묵시록 22장 1~5절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으로 표현된다.


에제키엘서의 물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하느님과 어린 양의 어좌로부터 나와서 흘렀다. 

그리고 에제키엘서의 물이 강가에 무성하고 풍성한 나무를 자라게 한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강 이쪽 저쪽에서 생명 나무를 자라게 하고 다달이 열두번 열매를 맺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게 한다. 

또한 이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하느님만이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시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유지된다.


요한 묵시록에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을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에제키엘서에서 사용된 '이 물'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은 하느님과 관계의 회복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첫 창조사업을 회복하는 물이면서 동시에 재창조 사업을 완성하는, 즉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물이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단지 옛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해방이나 민족적 회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무너진 성전 건물을 다시 지어 옛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다시 이루려는 외형적 번영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이 물' 개념을 통해 새로운 메세지를 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나 외형적 발전과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영광 회복과 그분을 신뢰하고 따르는 온 세상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풍요와 거움을 맛보고 체험하며 살도록 하는 하느님 나라의 건립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간다'

에제키엘서 47장 1~5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일반 성인(成人)의 키를 훨씬 넘길 정도록 깊고 넓은 강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그 물이 동쪽으로 계속 흘러가 아라바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아라바'(arabah; 구약에서 평지, 사막, 나룻터로 번역)이스라엘의 땅 중에서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형성되어 있는 저지대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아라바는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모양을 하며 60% 이상이 지중해 해면보다 더 낮은 극저지대를 형성하였다.

예루살렘의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은 자연스럽게 고지대인 서쪽의 예루살렘에서 저지대인 동쪽의 요르단 계곡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다시 사해 인근의 아라바 저지대를 지나 사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상반절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고, 후반절 바다로 흘러 들어간 물로 인해 그 바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한편 '되살아난다' 해당하는 '웨니르페우'(wenirpheu)원형 '라파'(rapha)'고치다' 혹은 '치료하다'의 의미이다.

특히 '라파'창세기 20장 17절에서 아비멜렉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취했다가 그의 가문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한 뒤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태가 열려 다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고쳐 주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죽은 바다가 되살아났다는, 즉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는 뜻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생명체가 잉태되거나 번식되지 못하는 바다가 생명이 살 수 있는 바다로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

'라파'(rapha)의 이런 의미를 살려 본문을 의역하면, '그러자 그 물이 고침을 받아 생물이 살게 되었다'가 된다.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나온 물이, 염분이 많아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죽음의 바다를 고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바다로 변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요한 복음 4장 13~14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복음(요한 5,1~16)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4ㄴ)


병의 치유를 받은 사람이 성전에 들어간 것은 하느님께 기도하며 감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요한 복음 5장 14절의 '만나시자'에 해당하는 '휴리스케이'(heuriskei; found)3인칭 현재 능동태인데, 이 동사의 주체인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 만났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만나신 이유는 주님께서 그에게 자신을 비로소 나타내시고, 그 사람에게 다시 죄를 짓지 말도록 경고하시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병으로 고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바로 죄였음을 알게 한다.


'다시는 ~마라'에 해당하는 '메케티'(meketi; no more)'이제는~아니'(no longer), '이제부터는~아니'(not from now on) 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명령법과 함께 쓰여 금지를 나타낸다.


또한 '죄를 짓지'로 번역된 '하마르타네'(hamartane; sin)'하마르타노'(hamartano)현재 명령형이며, 희랍어에서 현재형은 동작의 반복이나 계속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죄를 짓는 일을 계속하거나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원래 '하마르타노'(hamartano)동사의 기본 뜻은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인데, 하느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어긴 것을 가리키는데 쓰인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타'(hata)인데, '하마르타노'(hamartano)마찬가지로, 사람이 행위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제시하신 목적 혹은 표준을 놓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38년동안 앓아오던 병을 치유받은 사람에게 하신 것은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으니, 앞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만일 죄짓는 일을 반복한다면, 더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받았다. 여기서 '더 나쁜 일'로 번역된 '케이론~티'(cheiron~ti) '더 나쁜 어떤 것', '더 못한 어떤 것'을 가리킨다. 

38년동안 그를 지배하던 질병보다 더한 질병이나 어떤 더 나쁜 상태가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고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

-반영억신부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무엇이고 결과가 있는 것은 반드시 원인이 있듯이 무슨 일이든지 핑계거리는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핑계를 댄다는 것은 대개는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탓을 남에게 돌리는 마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주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아담은 아내핑계를 댑니다. 또 아내는 뱀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창세3,11- 13).



루카복음 14장15절 이하에 보면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 중 첫 사람은 밭을 샀는데 그것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사람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보려고 가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소. 하며 핑계를 대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벳자타 못가에는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대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나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병자 중 어떤 사람은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건강해 지고 싶으냐?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저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예, 낫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는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물에 넣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자기보다 먼저 물에 들어가는 어떤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투로 대답을 대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낫게 해 주실 분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며 낫고 싶은 희망을 표현하였습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쁜 놈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나뿐 놈 이랍니다. 오직 나만 아는 사람이지요. 오직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었으니 그렇게 38년 동안이나 있었지 않았을까? 또한 주변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오랜 고통 속에 머물러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모두가 주님의 능력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긴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하시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것을 본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들 것’을 들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율법에 매여서 볼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아야 할 것은 38년이나 앓다가 걸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고통을 거두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살리는 일은 이미 시작 되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걸어가는 것은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남을 탓하지도 말고, 규정을 내세워 살리는 일을 막지도 말아야겠습니다. 규정을 내세워 살리는 일을 막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핑계거리가 될 것이요, 사람을 위한 법이 오히려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본말이 뒤바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병든 질서를 만들고 병든 질서가 다시 병든 사람을 낳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예수님께서 끊어버리십니다 (이현주) .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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