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5일 토요일
[부활 성야]예수님 부활 (마태 28,1-10)
부활 성야의 모든 예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여 교회 전례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한다. 따라서 교회는 장엄한 전례를 통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다.
1. 오늘 밤은 오랜 관습에 따라 주님을 기억하는(탈출 12,42) 밤이다. 루카 복음(12,35)의 권유에 따라 손에 등불을 밝혀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깨어 있다가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밤이다.
2. 오늘 밤의 전례는 4부로 나누어 거행한다. 제1부에서는 빛의 예식을 거행한다. 제2부 말씀 전례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당신 백성에게 행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신뢰심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과 언약을 받아들인다. 제3부에서는 세례 예식과 세례 갱신식을 거행한다. 제4부에서는 세례로 새로 난 지체들과 함께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마련된 주님의 만찬에 참석한다.
3. 이 모든 예식은 밤에 거행한다. 곧 밤이 되기 전에 시작하지 말아야 하며, 주일 날이 밝기 전에 마쳐야 한다.
4. 미사는 비록 자정이 되기 전에 드리더라도 부활 대축일의 미사이다. 이 밤 미사에서 영성체한 교우들도 이튿날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다시 한 번 영성체할 수 있다.
5. 밤 미사를 드렸거나 공동 집전한 사제도 이튿날 다시 미사를 드리거나 공동 집전을 할 수 있다.
6. 사제들과 부제들은 흰색 제의를 입는다. 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초를 준비한다.
*제3독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갔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4,15─15,1ㄱ
그 무렵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7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너희를 뒤따라 들어가게 하겠다. 그런 다음 나는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18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9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서서 나아가던 하느님의 천사가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갔다. 구름 기둥도 그들 앞에서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가 섰다. 20 그리하여 그것은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름이 한쪽은 어둡게 하고, 다른 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아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3 뒤이어 이집트인들이 쫓아왔다. 파라오의 모든 말과 병거와 기병들이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24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5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27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 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30 그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게 되었다. 31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보았다. 그리하여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15,1 그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이 노래를 불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를 생략하고 바로 화답송을 한다.>
*이 독서는 결코 생략할 수 없다.
화답송 탈출 15,1ㄷㄹㅁ-2.3-4.5-6.17-18(◎ 1ㄷㄹ)
◎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하셨네. 주님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 내 조상의 하느님, 나 그분을 높이 기리리라. ◎
○ 주님은 전쟁의 용사, 그 이름 주님이시다. 파라오의 군대와 병거를 바다에 내던지시니, 뛰어난 장수들이 갈대 바다에 빠졌네. ◎
○ 바닷물이 그들을 덮치니, 돌처럼 깊이 가라앉았네. 주님, 당신 오른손이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시니, 주님, 당신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나이다. ◎
○ 당신은 그들을 데려오시어, 당신 소유의 산에 심으셨나이다. 주님, 그 산은 당신 거처로 삼으신 곳, 주님 손수 세우신 성소이옵니다.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나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3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4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때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7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일러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
8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부활성야 제3독서(탈출14,14-15,1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15)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16)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 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21)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22)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5)
'앞으로 나아가라고'에 해당하는 '웨잇싸우'(weissau)의 기본형 '나싸'(nassa)는 장막의 말뚝을 뽑아 내어 여행을 출발하거나 진행 중임을 뜻하는 단어이다.
즉 장막을 걷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다. 하느님께서 출발 명령을 하시는 이러한 모습은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명령을 연상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군대로서 하느님의 명령과 함께 이제 하느님의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의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하시는 총사령관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6)
'가르고서는'에 해당하는 '우베카에후'(ubeqaehu)는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그것을 쪼개라'는 뜻이다. '베카에후'의 기본형인 '빠카'(baqa)는 '(하나로 된 것을)쪼개다','(닫힌 것을)열다', '(알을)깨다'등의 의미가 있다. 본문은 홍해 바다를 둘로 완전하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가 단순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모세가 단지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가르는 행위까지 그에게 속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강한 바람을 사용하여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다(탈출14,21).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홍해를 '쪼개는'일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 임무는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속한 것임을 이러한 표현을 시사하고 있다.
'빠얍바샤'(bayabbasha)는 '마른 땅'으로 번역되었다. '마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베쉬'(yabesh)에서 유래한 명사 '얍바샤'(yabbasha)에 '~안에(안으로)'란 뜻의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런데 '야베쉬'나 '얍바샤'의 어근은 기본적으로 '수분을 지닌 물체가 수분이 없어서 마르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 속에는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려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있다. 바다나 강에 물이 빠지고 나면, 원래 물에 깊이 잠겼던 부분은 갯벌이나 진흙 수렁과 같이 사람이 걷기에도 힘든 땅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하느님은 지금 그것이 마른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과 짐을 실은 수레들이 안전하고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役事)하실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말씀이다.
더군다나 '마른 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얍바샤'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창세기 1장 9절,10절에 창조 때에 물과 분리된 '마른 땅'을 기리키는데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물 가운데서 땅을 분리하여 그곳엔 온갖 생명이 자라게 하셨다.
또한 노아의 홍수 후에 물이 걷히고 땅이 마른(창세8,14) 다음에 그 땅위에서 생명체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 속에서도 바다가 갈라지고 그곳에 드러나는 마른 땅은 하느님께서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한 또 다른 당신의 자비로우신 의지가 개입된 특별한 역사(役事)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바다 가운데 새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을 위한 재창조의 역사(役事)가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는 현상 가운데서도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탈출기 14장 24절에 '새벽에'(habboqer)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 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21)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 난 길로 가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질퍽이는 진흙투성이일 수 밖에 없는 바다 밑의 땅을 완전히 마른 땅으로 만드신 것이다. 바다를 가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하느님의 세심한 배려로 당신의 초자연적 능력이 개입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2)
본문은 탈출기 14장 16절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위를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히브11,29).
이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무런 두려움이나 주저함없이 주님 말씀에 의존하여 즉각적으로 홍해를 건넜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벽이 되어'에 해당하는 '라헴 호마'(lahem homah)는 '그 벽이 그들만을 위한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그 벽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벽으로만 작용하고 이집트 사람들을 위해서는 벽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4)
여기서 '혼란에 빠뜨리셨다'에 해당하는 '와야함'(wayaham; and troubled; and threw it into confusion)은 '혼란에 빠뜨리다','교란시키다'(2역대15,6), '어지럽게 하다'(1사무7,10)라는 뜻을 가진 동사 '하맘'(hamam)의 미완료형에 계속적 '와우'(wau; and)가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어지럽게 했다'라는 뜻이다.
이 동사는 구약에서 13회나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10회가 하느님을 주어로 삼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적대자를 당황케 하여 치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여호10,10; 판관4,15). 그러므로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적대자와 싸우는 전쟁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측면을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군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이스라엘을 도와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진정한 승리자가 하느님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대에도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배후에서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 주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승리 반영억라파엘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과 역경에 처한 모든 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 주시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세월호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과 유가족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을 청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해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두뇌로 납득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천사는 무덤에 달려온 여자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그분이 먼저 가 계시겠다고 한 갈릴래아로 달려간 사람들은 도중에 ‘평안하냐?’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믿고 따름으로써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십자가 아래 있었고, 이른 새벽 무덤으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누구보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열정이 우리 안에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간절한 소망과 더불어 더 큰 사랑으로 사랑에 사랑을 더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은총이며 희망입니다. 우리도 그분과 같은 은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다 허사입니다. 절망이고 암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부활은 우리 기쁨의 원천이며, 우리 삶에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확신과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소명을 일깨우게 됩니다. 이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298,19).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삶은 죄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악에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우리도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3주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아픈 기억, 상처를 잊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것들에 지적을 하고 비난을 하며 남의 일처럼 얘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얼마나 원칙을 지키고 사는지? 하느님 앞에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우선하지 않고 영리를 우선한 결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사건을 당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뻔뻔함에 주님의 용서를 청합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가를 기억하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충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배신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일상이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실행된 삶의 결과이고 사랑의 승리입니다. 아버지 뜻에 순명하며 걸으신 십자가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허무와 절망이 지배하는 암흑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쳐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랑만이 승리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랑에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에 못 구멍이 뚫렸듯이 우리의 가슴도 그리스도의 옆구리처럼 벌어져야 합니다.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의 제물이 될 때 비로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평화와 구원이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 세상에 전달될 것입니다. 텅 빈 마음, 영혼의 공허까지도 가득히 채워지는 기쁨이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면 우리 인생 자체가 허무해질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죽음뿐입니다. 모든 것을 허무로 삼키는 죽음, 세상만사의 결정적인 파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해도 그만일 것입니다”(1코린 15,32).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기에 아무리 험한 세파 안에서도 희망으로 기쁨을 간직합니다.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에 살고, 정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행하게 될 때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만이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순간을 살아도 거기에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날 때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평생을 누린 부귀영화도 죽음과 허무로 끝나고 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떠날 때 우리는 진리를 잃고, 길을 잃고, 방황하며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길을 지닌 참된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사랑에 목말라야 하겠습니다.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1요한3,16). 사도요한의 말씀에 따라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먼저 받은 주님의 사랑에 일치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매일의 삶이 거듭 태어나는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충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시금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인류는 원조의 범죄 이후 어둠의 그늘에서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류는 언제나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노예살이는 죄의 종살이를 표상하고 이집트 탈출은 은총과 자유의 삶을 표상합니다.
이 밤에 인류는 죽음의 멸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병거와 기병이 홍해 바다에서 멸망한 것처럼, 죄와 악마의 세력이 패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생명의 빛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는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의 샘물은 생명을 부어 주고 있습니다.
죽음과 생명, 죄와 은총이 교차하는 이 밤에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으로 그리스도인은 그토록 갈망하던 빛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밤이 되는 것입니다. 감격과 복된 밤이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무덤으로 다가간 두 여인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천사로부터 듣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용약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부활초가 켜졌습니다. 어두운 마음에 불기둥이 생겼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 오시는 거룩한 밤입니다. 불신을 버리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녹여 사랑과 용서로 빛을 내는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찾아오시는 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거짓에 의지하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빛으로 오십니다, 이 밤에. 알렐루야!
(류한영 베드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