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배우는 주님의 기도(1) |
|
|
'아빠' 부르면 기도 반은 성공 |
|
| 마더 데레사 수녀는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노하우 를 갖고 계셨다. 어떤 골칫거리가 앞에 놓여 있어도 어떤 난관이 길을 막고 있어도 마더 데레사는 그것을 정면 돌파할 신통한 방법을 알고 계셨다. 우리는 국내에서도 상영됐던 마더 데레사 에서 그 노하우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수녀님은 아기와 어린 아이들을 보호 교육하면서 좋은 부모가 나타나면 입양을 시켰다. 그런데 프랑스의 한 부부가 어떤 아이를 입양하기로 서류 절차까지 끝내놓고 기다려도 아이가 오지 않아 경찰에서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아이 행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수녀님과 사랑의 선교회는 아이들을 팔아넘긴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까지 가게 된다. 위기 순간에 수녀님은 사랑의 선교회에서 함께 봉사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한 영국인 자매에게 한 통의 전화를 한다. 전화 내용은 와서 함께 재판에서 싸워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유명한 변호사를 알아봐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 아이를 수소문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수녀님이 그 자매에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며 부탁한 전화 내용은 아주 짤막한 말이었다. 기도로 하느님을 감동시켜라! 이 얼마나 놀랍고도 의외의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통했다. 기도보다 더 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느님보다 더 큰 빽 이 어디 있겠는가! 마더 데레사는 기도 하나로 세계를 움직였다. 만년에 그녀는 노구를 이끌고 고통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연설을 통해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만나는 이마다 감동을 받았다. 겉모습으로는 연약한 여인이요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이었지만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그녀 연설을 듣고 인권 문제를 다시 고심할 만큼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기도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동료 수녀들과 아침 회의를 가졌다. 여러 수녀들이 건의를 하였다. 마더(=어머니)! 요즘 일거리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어요. 돌봐야 할 사람들이 막사가 넘치도록 몰려와서 하루 종일 일만 해도 일손이 모자랍니다. 그러니 아침 기도 시간을 1시간에서 반 시간으로 줄이면 어떨까요? 마더 데레사가 대답했다. 그래요? 할 일은 많고 일손이 모자란다구요? 그러면 기도 시간을 조정해야 되겠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 시간을 2시간으로 늘려야 하겠어요.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지요. 그렇다. 사람 의 계산법과 믿음 의 계산법은 전혀 다르다. 마더 데레사의 처방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묘안이었음을 훗날 동료 수녀들은 체험했다고 한다. 마더 데레사는 말한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생명과 힘과 존재 자체를 부여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그분 존재가 흔들리면 모든 존재는 끝나고 무로 떨어집니다. 당신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 둘러싸여 있고 그분 안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느님 사랑은 무한합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중에서). 각박한 세상 사느라고 바빠서 시간이 없어 기도를 못한다 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생각이다. 바쁠수록 그 문제를 위해 더욱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가장 훌륭한 기도의 선생님은 단연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는 분이셨다. 큰 사건이 있기 전에 항상 기도하셨고 기도를 하신 후에는 그 능력이 넘쳐났다. 홀로 한적한 곳에서 때로는 밤을 지새우시면서 어느 때는 피땀까지 흘리시면서 시시각각으로 기도하셨던 주님이셨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을 묻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기본이 되는 주님의 기도 를 가르쳐 주셨다(마태 6 9-13).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유일한 기도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경에 실려 있는 어떤 기도문도 주님의 기도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리라 생각할 수 없다 고 했으며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 라고 말했다. 이렇게 주님의 기도는 기도의 방법이자 동시에 내용이며 복음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기도의 정수이다. 이 기도에는 기도가 갖춰야 할 형식(形式)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우리가 기도할 때에 1) 하느님을 아빠 라고 부르는 것 2) 먼저 하느님의 일(거룩함 나라 뜻) 을 위해 기도하는 것 3) 다음에 사람의 일(양식 화해 성화 등) 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기도에는 기도가 갖춰야 할 내용(內容)이 잘 나타나 있다. 각 구절구절에 담긴 뜻을 헤아려 보자. 성경 원문을 보면 아버지 가 먼저 나오고 '하늘에 계신'이라는 관형어가 따라온다. 루카 복음에는 아예 하늘에 계신 이라는 수식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님의 기도의 첫 단어가 아버지 곧 아빠 라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람어로 아빠(abba) 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기도의 포인트를 시사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기도할 때 하느님을 전능하시고 엄위로우시고 온 우주를 주재하시고… … 하신 아도나이 야훼 하느님 하면서 너무 거창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그렇게 부르면 하느님이 저 높이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신에 하느님을 아빠 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을 아주 가까이 계신 분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는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느님을 아빠 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신 이유 가운데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아빠가 아이에게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쓰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인 것처럼 하느님이 사람에게 그런 아빠 라는 것이다. 둘째 기도하는 이는 철저하게 어린이 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는 어린이처럼 (마태 18 3) 단순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철부지 어린아이들 (마태 11 25 참조)에게 당신을 드러내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어린이가 되어 아빠 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정서적으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면 이미 기도의 반은 배운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
|
|
다시 배우는 주님의 기도(2) |
|
|
하느님 이름이 점점 커져야 |
|
| 2006년 2월8일자 「주간조선」은 占占 커져가는 운세산업 연 2조원 시장 이라는 제하에 최근 불고 있는 점술문화 바람을 집중 조명했다. 추상적 언급보다 실제 현장의 스케치가 그 실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대로 발췌 인용해 본다. 인터넷 운수사이트 150여개 호황… 일부 대학에 관련학과 개설 무속타운 형성도 잇따라… MBA(경영학 석사) 출신의 한 벤처기업 사장(39). 얼마 전 이 남자가 의외의 말을 들려줬다. 직원을 뽑거나 사업상 큰 결정을 할 때 무당을 찾아 굿을 합니다. 아니 평소 온갖 차트와 숫자를 신봉하며 논리로 무장한 그가 아닌가. 혹시 저 매끈한 양복 안주머니에 액땜 부적이라도…? … 굿 한 번에 들어가는 비용은 100만원 상당…. 점술 밸리 를 아시는지. 점술 밸리 란 최첨단 패션의 현장인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점집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려한 수입품 매장과 고급 레스토랑 사이로 점집과 사주카페 70여개가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전통 역학부터 구슬점 타로카드 대나무 뽑기 등 종목은 다양하다.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해 12월24일 오전 이곳의 점집 운수 좋은 날 은 예약 손님들로 줄을 이었다.… 이 점집의 고객은 남녀 비율이 약 6대 4 정도로 남성이 많고 전문직이 대부분이다. 역술가 김씨는 펀드 매니저와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많이 찾는다 며 질문 내용은 주로 주가 흐름과 부동산 투자 대상지 라고 말했다. 첨단과학ㆍ인터넷 정보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점(占) 은 사라지지 않고 운명산업 으로 진화하고 있다. 젊은이들 구미에 맞춰 재미를 강조하고 재테크ㆍ입시ㆍ이혼 등 전문(專門) 영역으로 세분화하는 형식이다. 덕분에 인터넷 운세 콘텐츠는 게임 다음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SK텔레콤의 지난해 운세 서비스도 매출이 전년보다 40% 증가했다. 현재 45만 역술ㆍ무속인이 관련된 전체 운명산업의 규모는 2조원(역술인협회 추산)이 넘는다. 영화산업 규모(2004년 2조3000억원)와 맞먹을 정도다. 고객도 과거 주부나 공무원 등에서 전문직으로 중년에서 대학생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운명산업의 형태도 쇼핑 플라자 인터넷 휴대폰 등으로 다양해졌다. 신세대 직장인 성혜지(25·대학교직원)씨 휴대전화엔 부적이 다운 받아져 있다. 노란색 바탕에 붉은 글씨인데 일명 애인 생기는 부적 이다. 그의 휴대폰 벨소리는 이달 그의 운세를 상승시켜 준다는 피리 소리. 모두 돈을 주고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성씨는 그리 비싸지도 않아 친구끼리 재미로 주고받는다 고 말했다. 일반 기업도 점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이마트 등 대형 할인마트나 CGV 같은 영화관에는 점집이 1~2개씩은 입점해 있고 백화점은 점 봐주는 이벤트를 수시로 열고 있다. 무속 타운 형성도 잇따라 현재 서울 미아리와 이화여대 앞 강남 압구정동에 이어 인사동에서도 무속 종합 쇼핑몰 이 점집 분양 중에 있다.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왜 요즘 젊은이들이 성당을 찾지 않는지를 어느 정도 해명해 주는 기사가 아닐까. 占占 커져가는 운세산업 의 여파로 사람들 마음에서 하느님 자리는 점점 작아져 가고 있지나 않은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추세는 우리가 주님의 기도 초반부의 내용을 더욱 애절하게 바쳐야하는 까닭이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평소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 의 핵심 정신을 다시 확인해 보자. 원문 그대로의 의미로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시며 이다. 빛나다 는 표현은 없다. 거룩하다 라는 단어는 본래 거룩한 그릇(제기) 거룩한 장소(성소)와 같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물건 즉 하느님께 바쳐진 것 하느님께 속한 것에 붙는 단어였다. 그러다가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 곧 사제에게 거룩 이라는 단어가 붙게 됐다. 그러니까 거룩한 것 이란 특별히 성별(聖別)돼 하느님께만 속한 것을 말한다. 곧 신적 고유성 신적 불가침성을 드러내며 범접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이름 은 무엇을 뜻할까? 이름 이란 하느님 자신 하느님의 인격 을 말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컬어지는 하느님 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의 뜻은 우리가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신 분으로 알아보고 인정하고 공경할 수 있도록 하며 그 거룩함이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침해 당하지 못하게 우리 안에 드러내며 의 의미이다. 말하자면 세상의 죄로 더럽혀지고 무시당한 아버지의 이름이 다시 거룩함을 드러내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언어 사고 행동 등을 통해서 그 이름을 더럽혔다. 문화 전반과 첨단 과학 낙태 유전자 조작 등 무례하게 하느님 영역을 침해하며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했다. 하느님의 위신이 말이 아니게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본래 거룩히 빛나던 이름을 죄인들이 영적 눈을 뜨고 회개해서 새삼스럽게 알아뵙도록 해 달라 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 는 한국이나 영국 일본과 같은 어떤 나라(nation) 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통치권(kingdom of god)을 의미한다. 그 통치권은 어떤 힘에 의한 다스림이 아니라 평화와 사랑으로 통치되는 파라다이스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 14 17). 결국 모든 이가 하느님을 주님 으로 고백하고 그동안 악의 세력과 사람에게 내주었던 하느님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해 온 세상이 정의와 평화와 기쁨 (로마 14 17)으로 넘치는 하느님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당신의 뜻 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려고 하셨던 그 뜻 용서와 사랑이 바탕이 된 인류 구원 을 말한다. 인류를 영원한 생명에 참여시키는 이 구원은 세상의 구원이면서 나 자신의 구원이다. 이루어지소서 는 아버지의 그 구원 의지가 이 땅에서 완성되소서 라는 뜻으로 종말론적 성취를 뜻한다. 이미 하늘에서 세우신 그 계획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통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
|
|
다시 배우는 주님의 기도(3) |
|
|
당당히 축복을 청하자 |
|
| 좀 과한 말이 될지 모르겠으나 천주교 신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복기도 가 아니라 기복기도 노이로제 가 아닐까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예를 들면 자녀들이 대입 수험을 앞두고 있을 때 남편이 승진의 기로에 있을 때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등등의 경우에 대부분의 천주교 신자들은 그 문제를 당당하게 기도제목으로 삼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혹시 누가 기복기도 한다고 핀잔을 줄까봐서이다. 필자는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기복기도 하지 말라 고 누누이 강조하는 것을 예사로 봐왔다. 그 취지인즉슨 해야 할 윤리적-영성적 도리는 안 하면서 미신적으로 복만 빌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신자들은 그 말을 세속적인 일을 위해서는 아예 기도하지 말라 는 말로 소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살다가 어떤 어려움이 생길 때 개신교 신자의 약 70%는 교회에 가서 기도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천주교 신자 가운데는 성당을 찾아와 기도 요청을 하는 사람이 30%도 채 안 된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기복기도(祈福祈禱)를 글자 그대로 풀면 복을 구하는 기도 가 된다. 복을 구하는 것이 과연 잘못인가? 아니다. 성서는 온통 축복의 약속으로 채워져 있고 축복을 청하는 기도로 가득하다. 신자들이 기도를 잘 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신자들이 기복기도 노이로제 에 걸려 힘있게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은 더 큰 문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새해벽두에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을 빌어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 6 24). 이 축복의 내용을 음미해 보면 핵심적인 것은 액땜 만사형통 평강이다. 흔히 기복기도 를 한다고 경고 받을 소지가 있는 기도 제목들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기도 가운데 사람에 대한 4가지 청원을 우리는 추상화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주님의 기도 로 돌아가 그 가운데 사람에 대한 청원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양식 이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매일 매일 의식주를 해결해 주시기를 아빠 에게 청하는 기도다. 이는 먹을 것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 을 구체적으로 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의 핵심은 바로 오늘 에 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께서는 내일 혹은 더 먼 미래의 양식까지 한꺼번에 주실 수 있는 분께 오늘 필요한 것을 주시기를 청하라고 말씀하신 걸까? 그것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매일 그분께 의지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라는 뜻이다. 만나 와 메추라기 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민수 11장). 배부르면 딴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그때그때 하느님께 필요한 것을 청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 으로 바라는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성서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 이며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다(야고 4 2-3).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 기도는 우리가 자주 범하는 구체적인 죄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며 우리도 남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하겠다는 결심을 아뢰는 기도이다. 우리는 이 기도를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겠으니 하느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기를 청한다 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는 것 은 조건 이 아니라 결과 다. 형제에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마태 18 21-22)고 말씀하시며 무자비한 종의 비유 (마태 18 23-35)를 들어 말씀해 주신다. 이 무자비한 종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 를 먼저 받은 사람들이다. 그 용서는 우리 죄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으신 무조건적 용서였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큰 용서의 빚을 지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문의 참 뜻은 이미 용서받은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용서를 취하할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마태 18 35 참조). 다음으로 사람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온갖 유혹을 사람의 힘만으로는 물리칠 수 없기에 하느님의 보호 와 도움 을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유혹을 물리칠 능력을 주님께 청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다와 베드로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는 스스로 그 굴레에서 벗어 나오려 하다가 결국 자살했고(마태 27 3-10 참조)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배반한 베드로는 똑같이 유혹에 빠졌지만 주님께 의탁함으로써 유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마르 14 72 참조). 우리는 매일매일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악에서 구하소서 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와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는 유혹 근처(1m 근방)에도 가지 말게 해 달라는 것을 뜻하고 악에서 구하소서 는 만일 유혹에 빠지게 되거든 그 악을 물리치고 빠져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악의 세력 과 싸움에서 속아 넘어가거나 굴복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기도다. 이는 또한 궁극적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악의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도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