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구원경륜

2008. 12. 1. 오후 2: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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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구원경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성령 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뿔뿔이 도망친 겁쟁이 제자들을 당당한 선포자 로 변화시켰다(사도 2 1-11 참조). 이 성령 이 죽음이 두려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증거자 로 변화시켜 마침내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뒤따라 대담하게 순교 하게 했다.

 한마디로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제자들이 이어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바로 이 성령으로 인해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송두리째 바뀌어 예수님이 행한 일을 이어서 행할 수 있게 됐다.

 성령을 받음으로써 베드로와 바오로도 예수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성령의 능력이 절름발이를 낫게 했고(사도 3 1-10; 14 8-10 참조) 죽은 이를 살려냈고(사도 9 36-41; 20 7-12 참조) 악령을 몰아냈고(사도 16 16-18 참조) 열정적으로 설교하게 했다(사도 2 14-36; 17 22-31 참조).
 이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진 그들은 힘차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사도 2 38 참조) 사람들이 하느님 성령을 받도록 이끌어주기도 했다(사도 8 15 참조).
 성령께서 이루신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성령으로 인해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영) 이 될 수 있었다(사도 4 32 참조). 성령은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소유와 인종과 성별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의미를 잃게 됐다(갈라 3 28 참조).
 이렇게 성령이 만민(萬民) 위에 내려옴으로써 지난날 이스라엘의 아버지 (이사 64 7)에 지나지 않았던 하느님은 마침내 만민의 아버지 (에페 4 6)가 되셨다.
 그렇다면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실까? 이 물음은 우리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물음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간 삼위일체 논의는 사변적(思辨的)으로만 흘러왔다. 곧 성령은 어떤 분이고 성령과 성부 성령과 성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이를 소위 내재적(內在的)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그런데 이 내재적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면 의당 사랑 이라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사랑 이외의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한번 보자. 누구든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 4 8)라는 성경 말씀을 즐겨 인용한다. 사랑이란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게 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이 가능하려면 하느님 안에 최소한 두 인격이 공존해야 한다. 홀로는 그 누구도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삼위일체가 아니셨다면 세상이 창조되기 전까지 하느님은 사랑이셨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귀납적으로 접근할 때 사랑의 속성상 하느님은 삼위일체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분들 사이의 문제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좀 이기적이고 실용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다. 대관절 이 삼위일체가 나의 삶 나의 구원과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 이 물음에 우리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 성부는 우리 앞에 계시는 하느님 이시다: 성부 하느님은 근원이시고 목표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근거 되시고 생명의 마감을 정하시는 분이시다.
 ─ 성자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 이시다: 성자는 임마누엘(이사 7 14 참조) 곧 우리와 함께하신 하느님이시다. 죄인의 대변자 억압받고 소외받는 자의 변호인 찾는 이와 묻는 이의 스승(요한 14 26 참조) 고통받고 절망한 자의 목소리(루가 12 12 참조)시다.
 ─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 이시다: 우리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는 분이시다. 새로움 평화 쇄신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을 파라클리토(
araclitus)라 불렀다. 내가 아버지께 청해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파라클리토)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 26). 이는 우리에게서 성령께 대해 신뢰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훌륭한 카피 였던 셈이다. 파라클리토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어로 파라클리토는 마치 대변인이나 변호사처럼 곁에 서 계신 분 이라는 뜻이다. 심한 박해를 받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의미는 큰 위안을 줬을 것이다.

 둘째 파라클리토는 큰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을 위해 파라클리토는 큰 소리로 확신을 심어 주고 사기를 진작시킨다.

 셋째 파라클리토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깊은 한숨 곧 탄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 을 하며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신음)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 26).
 이러한 파라클리토 성령이 나 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내 편이시며 내게 힘을 주신다. 성령을 등에 업으면 나 는 나 자신이 미덥고 자유롭다. 파라클리토 성령은 내 맘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시며 나 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모든 것을 덮은 막을 벗기신다. 성령께서 막을 걷어낼 때 우리는 온전한 진리를 깨닫는다. 통찰력이 생기고 근원을 볼 줄 안다.

 현대인 영성에 유익한 양식을 대주고 있는 안셀름 그륀은 성령을 이렇게 말한다.

  성령은 우리의 동반자요 위로자며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또한 생명의 샘이요 불이며 빛이요 사랑이며 또한 기름 바름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샘입니다. 이 샘은 하늘스런 것이므로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덥히는 불이며 밝히는 빛입니다. 성령은 기름 바름입니다. 우리 상처를 치유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짊어지게 합니다.

 곧 우리는 우리를 동반하시면서 치유해 주시는 분인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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