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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미사 덕에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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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의 세계적 성령운동가 아일린 조지 여사는 미사의 은총을 환시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미사가 집전되는 중 제대 위에서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운데 신자들 머리 위로 은빛 눈 같은 은총이 내리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이는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기적이 매일 미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사는 단지 신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제헌되는 것이다. 미사는 또한 단지 과거 의 기념이 아니라 오늘 새롭게 발생하는 구원사건이다. 미사 시제(時制)는 철저하게 현재(現在)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성 토마스 데 아퀴노(1225-1274)는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 하나로 극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미사성제를 바치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엄청난 말이다. 곧 미사 때마다 갈바리아에서 바쳐진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가 똑같이 봉헌된다는 의미다. 성인은 기념 재현 현재화 등 용어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실을 이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그는 1273년 성 니콜라우스 축일에 미사(=성체성사)를 집전하던 중 깊은 경이감에 사로잡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나서 과거 7년간 써왔던 대작(大作) 신학대전 을 미완성의 상태로 방치해 두고 묵언(默言)에 잠겼다고 한다. 훗날 성인은 그 까닭을 묻는 동료 수사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때 내가 보았고 나에게 계시됐던 것들에 비하면 그동안 내가 썼던 모든 것들은 덤불에 지나지 않는다네. 모르긴 모르되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이 두 진술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른 성인 성녀의 말씀들이 있다. - 하느님의 모든 진노와 분노가 미사 봉헌 앞에서 풀어진다 (성 알베르토). - 미사 성제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직 미사 성제만이 하느님 (진노의) 팔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이들은 모두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진술을 뒷받침해주는 말씀들이다. 즉 미사는 이 시대에 자행되는 온갖 죄악을 대신해서 새롭게 제헌되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 곧 죄의 용서를 위해 오늘 바쳐지는 예수님의 몸 이요 오늘 흘리는 예수님의 피 라는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니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는 그 앞에서 어찌 무감각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미사에 임하는 우리는 게쎄마니 동산에서 잠들었던 사도들과 같아서는 안 되며 임종의 고통을 받으시는 예수님께 무관심한 채 십자가 밑에서 주사위를 던지던 군인들과 같아서도 안 된다. 그러기에 오상(五傷)의 성 비오(1887-1968) 신부는 우리가 이 파스카 제사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갈바리아 산에 계셨던 성모님처럼 성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처럼 사랑과 연민의 정을 지니고 참례하라. 그대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신비에 정신을 집중하라. 그대의 영혼을 구속하고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신비에 마음을 집중하라." 성인들은 하느님의 특은을 받아 미사의 진가(眞價)를 알았고 누렸다. 그러므로 그 누구의 진술보다도 성인들의 증언은 믿을 만하다. 대표적인 것들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체 안에서 만날 수 있다고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1811-1868)는 증언한다. 그대들이 구하는 모든 것은 (은총 도움 위로) 성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듣고자 하는 따뜻한 말들 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적들… 예 그렇습니다. 성체 안에는 기적들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사실이다. 성체는 예수님 자신이고 예수님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믿을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신자가 성체신심을 통해서 체험해야 할 진실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미사를 봉헌해 주는 것이 최고 선행(善行)이라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는 가르친다. 이 세상의 선한 모든 일을 합해도 미사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선행은 사람의 업적이지만 미사는 하느님의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사봉헌은 곤경에 처한 이나 중대사를 앞둔 이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은총을 누리게 하는 가장 탁월한 공로가 된다. 이 역시도 관건은 체험이다. 체험한 사람이 더욱 많이 누리고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관심이 없어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25 29). -미사는 연옥 영혼을 위해서도 큰 효력을 지닌다고 성 요한 보스코(1815-1888)는 이렇게 증언한다.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는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줍니다. 사실 미사는 그 영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이 고통 받는 기간을 단축시켜 주며 그들을 속히 천당으로 데려다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저 세상에 있게 될 때에 우리 영혼을 위하여 바치는 미사 성제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려지는 것은 없게 될 것이다. 미사가 이렇게 은혜로운 것이라면 미사에 자주 참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미사를 의무 로만 여긴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도 많다고 느껴질 것이요 미사를 은총 으로 여긴다면 매일 한번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성녀 베르나데트(1844-1879)의 말은 바로 우리를 위한 권고이다. 매 시간 세계의 다른 곳에서 미사가 바쳐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 미사와 일치시키며 특히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때 그렇게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말이 미사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흥을 돋운다. 미사 성제에 참례하러 가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사가 세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영원히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의 말을 가슴에 새기면 미사시간이 괜시리 설렘 속에 기다려질 것이다.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영혼과 동행하는 수호천사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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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미사 덕에 산다
2008. 12. 1. 오후 2: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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