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민 신부 “우리가 믿는 부활은 없다” | ||||||||||||
| 이제민 신부, 대화문화아카데미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부활관 밝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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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지난 2월 10일 ‘내가 믿는 부활은?’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부활관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민 신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칼 라너의 말을 빌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은 없다고 믿는다” 고 말했다.
이제민 신부는 “부활메시지가 단순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이 이 다음에 부활해 천당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활신앙이 허무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만 부활하고 나머지는 부활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넌센스라고 일갈한다. 더군다나 예수의 이름과 ‘부활’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수천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을 지옥에 버리는 것 역시 오만이라고 말했다.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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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kr3217) (2012/02/14)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하느님의 나라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이곳에서 부활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후의 부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살던 방식대로 그곳에서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생지옥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저주하고 이웃을 저주하던 사람을 아무리 저 천국 꽃 밭에 데려다 놓는다 해도 그는 천국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자신은 물론 이웃을 저주하며 앉아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천국은 이미 이곳에서 누리고 맛보며 살다가 저곳에서 완성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곳에서 완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몸을 지니고 사는 동안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탄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쁜 영의 유혹과 욕심으로부터 완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손수 만드신 이 세상을 보시고 얼마나 좋으셨는지 그 좋은 곳을 누리고 맛보게 해주고 싶으셔서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누리다 오라고. 그리고 더 큰 뜻은 창세기의 완성을 위해서 그렇다고 묵상해 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하지만 그들을 위한 특별한 사랑의 조치였습니다. 죄를 지은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따 먹고 영원하게 살아 영벌의 상태로 사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던 하느님의 사랑의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창세기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하느님의 본래 계획은 우리가 영생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과 비슷하게 만드신 것에도 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그런데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영생을 하면 하느님과 정 반대편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에덴에서 추방시켰고 다시 그들에게 당신의 계획대로 영생을 주시려고 이곳의 삶을 허락하셨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곳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삶이겠습니까? 저 천국에 없는 것이 이곳에 있습니다. 장가들고 시집가고 먹고 마시고... 그러므로 이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저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저 천국에 없어서 누리지 못하는 좋은 것을 허락하신 그 사랑에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일상적으로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축제의 날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이 고백하듯 소풍 온 삶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민 신부님이 만난 하느님이 아닌 각자의 삶 안에서 신앙 안에서 성경 묵상 안에서 각자의 하느님을 만나고 고백하시길 빕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것입니다."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물음에 뭐라고 대답을 하실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이의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후 부활이 없다고 믿고 살던 사두가이들과의 논쟁(루카 20,27-40)에서 직접 부활의 삶에 대해서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도 말씀하고 계신데 누구의 말씀이 진리입니까?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isu@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