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실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쓰여졌다. 구약의 경우 BC 1400여년부터 BC 430여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여년 동안에 걸쳐 기록됐다. 그렇다면 기록은 어떤 형식으로 이뤄졌을까?
모세 오경은 통상 BC 1446년 출애굽 이후부터 모세가 모압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던 BC 1406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성서비평학자들은 보고 있다. 오경의 저자가 모세라는 데는 크게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저자(author)와 기록자(writer)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어느 유명 인사가 자신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을 출판할 때, 그 인사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다수는 자신의 삶을 조명한 여러 자료와 그동안 모아놓은 메모 쪽지, 심지어 구술 형식의 녹음 테이프 등을 기록자에게 넘겨준 후 몇차례에 걸쳐 써온 기록을 보고 편집을 가미해 완성한다. 기록자를 선택할 때 자신의 생각과 철학 그리고 믿음의 체계와 세계관 등을 꿰뚫어 보는 문필가를 고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출판된 책의 저자는 결코 기록자가 아닌 유명 인사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 오경을 모세 자신이 직접, 그것도 몽땅 썼다고 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한 반증 자료는 성서에서 얻을 수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창 5:1·개역한글) 이 문장이 개역개정에서는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모세는 이미 아담의 계보를 담은 책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모세는 토판이나 점토판에 기록된 것과 아담의 계보와 같은 책자, 그리고 구전에 의해 전해져온 설화 등 모든 자료를 참고했으며 이를 누군가에게 넘겨줘 편집했을 것으로 비평학자들은 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주 및 아담과 하와의 창조, 아담의 타락(선악과 사건), 노아의 대홍수, 바벨탑 사건 등 이른바 ‘창세기 4대 사건’을 과연 모세가 어떻게 숙지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는 전 지구적 사건으로서 당시 자료들은 모두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노아 홍수를 BC 2517년 경으로 잡는다면 오경이 쓰여지기 시작했던 출애굽 시기까지 무려 1000년 이상의 틈이 발생한다(표 참조). 이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모세는 어떻게 창세기 4대 사건을 비롯, 노아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날짜별로 낱낱이 기록케 하고 편집에 관여했을까?
문제를 풀기 위해 먼저 성서에 등장하는 계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담(930세 향수)을 1대 조상으로 간주한다면 969세를 향수해 가장 장수한 므두셀라는 8대, 노아(950세 향수)는 10대, 아브라함(175세 향수)은 20대, 야곱(147세 향수)은 22대, 모세(120세 향수)는 26대가 된다.
여기서 나이를 계산해보면 므두셀라는 아담이 687세되던 해에 태어나 969세를 향수하고 죽기 때문에 아담과 무려 243년 동안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므두셀라는 노아가 홍수를 맞았던 해에 죽는다. 당시 노아의 나이는 600세. 그러므로 므두셀라는 위로는 아담과 243년을, 아래로는 노아와 600년을 함께 산 것으로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함께 삶을 같이 하는 동안 므두셀라는 아담으로부터 에덴 동산에서 벌어졌던 꿈같은 이야기와 선악과 사건에 얽힌 한맺힌 절규의 상황 등을 정확하게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고 이런 내용을 노아에게 600년 동안 전해줬을 것이란 해석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아버지인 9대 라멕도 계산해보면 아담과 56년 동안 동시대를 살았다. 노아는 므두셀라와 아버지 라멕으로부터 자신이 596세가 되던 해까지 바로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청취할 수 있었다는 게 비평학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11대 셈은 20대인 아브라함이 159세가 되던 해까지 함께 생존했다. 대홍수가 터진 2년 후에 태어난 12대인 아르박삿도 아브라함과 88년 동안 같은 세대를 살았다. 13대 셀라도 118년 동안, 14대 에벨 역시 아브라함과 179년 동안 함께 지냈다. 15대 벨렉의 경우는 자신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11∼14대가 모두 생존해 있었던 거대 혈족사회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할 수 있었다. 이들 4대에 이르는 계보는 무엇보다 대홍수 이후의 상황, 특히 바벨탑 사건을 가장 생생하게 들었거나 경험했던 세대들이다. 16대 르우, 17대 스룩 역시 바벨탑 사건을 경험하면서 아브라함과 18년, 41년 각각 삶이 겹치기도 했다.
결국 계보를 역추적해 보면 창세기의 4대 사건을 비롯해 그들의 삶에 대한 양식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체계를 담은 자료 등이 단 한번도 끊기지 않고 모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성서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 인간의 편에서는 빈틈 없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의도된 전승 과정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오경이 나오기까지 모세에게는 도대체 무슨 힘이 작용했을까?
남병곤 선임기자
namb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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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주신 분들 △김근주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 △김상근 교수(연세대) △김진섭 교수(백석대) 김홍석 이사(한국창조과학회) △김회권 교수(숭실대) △민영진 박사(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신현우 교수(웨스터민스터 신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