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줄의 교훈

2011. 11. 19. 오전 8:10:37

글자

다림줄의 교훈

아모스 7:7-9

누가복음 10:29-37

 

하나님이 예언자 아모스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에 관한 환상을 주셨습니다. 메뚜기와 가뭄으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리라는 환상을 보여주시고는, 마지막으로 다림줄의 환상을 아모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환상 속의 다림줄은 사실 주로 건축을 할 때 사용되어지는 도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건축물이 흐트러짐 없이 탄탄하게 똑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땅으로부터 수직으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운 일종의 기준선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다림줄에서 한치라도 어긋남이 생긴다면 어떠한 건축물들도 온전하게 세워지거나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모스의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리워 놓은 다림줄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주의 성소를 지을 때 다림줄을 벗어나 건축하지 않는 것처럼, 주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벗어나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의 모습은 다림줄을 잃어버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리게 될 운명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다림줄이 수평과 수직상태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도구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 아버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아래로는 우리 서로 간의 수평적 관계를 규정짓는 삶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힘, 그리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신 6:5), 또 우리의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레 19:18). 이것이 오늘 구약과 신약 본문 공통으로 흐르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올바르게 서기 위한 다림줄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본문의 내용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교회가 다림줄에 맞게 서 있기 위해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 율법교사에게 이 비유를 통해 그 길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사실 율법교사는 이미 자신이 알고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앞 구절인 누가복음 10:25-28의 말씀을 보면, 이미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교사가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까닭이라 보시고, 그를 깨우쳐 주시고자 했던 겁니다.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그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엄격한 율법의 전통 아래 살았던 유대인들은 양 손목에 “필락테리스”라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몇 가지 성경구절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보시기에 이들은 이미 다림줄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은 것은, 다림줄을 따라 건축물을 세워 가듯이 말씀 그대로 행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 속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예수께 직접 질문을 던졌던 율법교사는 모두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서도 황급히 지나쳐 가버립니다. 그 이유는 율법에 따라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경우 7일간 불결해 져서 자신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민 19:11)는 위험부담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에 그들이 제사를 드려야 하는 입장에서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무감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변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님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아무리 가치있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조금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비유 밖 현실에 드러난 율법교사의 모습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율법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 것을 권면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율법교사는 그렇게 실천하며 사는 삶 보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정의내리는 피상적인 앎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탁상공론인 셈입니다.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머리로 아는 것에만 매달리는 꼴입니다. 다림줄을 따라 건축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세워가는 일에 관심을 두기 보다, 다림줄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가에만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나아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그 이웃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이웃은 특정한 사람들로만 국한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웃의 범위를 정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주님은 아는 그대로 행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곧 누가인가를 묻기 이전에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큰 가치요 계명임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들에게 다림줄을 기준으로 온전하게 서 있는가 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 줍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의 동포들을 도울 수 없다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 혹 율법교사의 모습을 닮지는 않았습니까? 내 교회의 성장을 위해 기도와 찬양에 힘쓰면서, 교회 밖 세상의 고통과 근심에는 무관심하지 않았습니까? 혹 우리 교회 안에서 조차 저기는 우리와 상관 없는 기관이요 사람들이니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을 품어 보신 적은 없습니까?

 

교회의 다림줄인 말씀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건강한 교회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아무리 옳고 그럴듯할 것이라 여길지라도, 모든 판단의 몫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는 법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다림줄을 어기고 멸망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행여 그 기준에서 벗어나 비틀거리는 우리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가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다림줄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 기도학교

2011.11.05. 11:50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보기
1 하나님의 다림줄1 (암7:7) 여주봉 목사
 
2 하나님의 다림줄2 (마13:13-16) 여주봉 목사
 
3 하나님의 다림줄3 (요16:1-2) 여주봉 목사
 
4 하나님의 다림줄4 (요16:1-2) 여주봉 목사
 
5 하나님의 다림줄5 (요8:47) 여주봉 목사
 
6 하나님의 다림줄6 (마6:19-24) 여주봉 목사
 
7 하나님의 다림줄7 (약3:14-18) 여주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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