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홍수를 어떻게 증명 하는가?

2012. 2. 14. 오전 8:41:26

글자

현대 노아 방주

 

제2부-  노아 홍수를 어떻게 증명 하는가? 

경의 비판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성경의 사실성과 영감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때, 가장 많이 이슈로 삼는 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비판할 때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을 제일 먼저 들고 나와 비판해 왔으며, 무신론자, 이성주의자, 인본주의자, 과학주의자,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비지성적이며, 비과학적인 책으로 폄하할 때 가장 먼저 인용하였던 부분이 이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이다.

성경 창세기에 무려 6, 7, 8, 9장에 걸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사건과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만일 이 사실이 한낱 설화나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홍수를 증명할 수 있는 사실들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이다. 함께 탐구해 보자.
 
 

구약의 홍수를 증거해 주는 것들

 

증거 1.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홍수 전설들

지구 전체를 휩쓸었던 대홍수에 대하여 이 세상에는 8만여 개의 기록과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 원주민들의 역사나 전설에 전 지구적인 홍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벨라미(H.S. Bellamy)는 “달과 신화 그리고 사람(Moons, Myths and Men)”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적으로 500여 개의 홍수 전설들이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 바빌로니아, 웨일스, 러시아, 인도, 미국, 하와이, 스칸디나비아, 수마트라, 페루, 폴리네시아 등에 존재하던 고대 문명들은 모두 대홍수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홍수 이야기들에는 종종 다가올 홍수에 대한 경고, 사전에 배를 만드는 것, 동물들을 싣는 일, 가족들을 모음, 물이 감퇴한 정도를 알아보려고 새를 보내는 것 등과 같이 성경적 내용과 일치하는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홍수에 관한 일관된 견해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은, 그것들이 모두 같은 기원(the Bible's record)에서 나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두로 전해졌을 내용들은 조금씩 바뀌어졌다. 몇 나라의 홍수 전설을 살펴보자.

 

중국(China)의 홍수 전설: “누아”라는 사람과 그의 가족 8명이 큰 배를 짓고 큰 홍수의 멸망을 피했다는 BC 2300년경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히킹(Hihking)”이라 불리는 중국 고전은 대홍수로부터 살아난 “후히 가족(The family of Fuh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고대 이야기는 산과 모든 것을 포함한 전 대륙이 홍수에 잠겼으나, 배를 탄 한 가족만이 생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사람을 그들 문명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이 기록은 후히, 그의 아내, 세 명의 아들 그리고 세 명의 딸들이 대홍수로부터 살아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후히와 그의 가족은 지구 상에서 살아난 유일한 가족이고, 세상에 다시 퍼졌다고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남서 탄자니아(Southwest Tanzania): 옛날에 강에서 홍수가 시작되었다. 신이 두 사람에게 배에 오르라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많은 씨앗과 많은 동물을 실으라고 하셨다. 홍수의 물은 마침내 산을 덮었고, 결국 홍수가 그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물이 다 말랐는지 알아보려고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돌아왔다. 다음번엔 매를 보냈는데, 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동물들과 씨를 가지고 배에서 나왔다.

멕시코(Mexico): 톨텍(Toltec) 원주민들은 최초의 창조가 1716년 동안 지속되다가, 한 번의 홍수로 멸망했으며, 유일하게 한 가족만이 살아남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아즈텍(Aztec): 타이피(Tapi)라는 한 남자가 오래전에 살았다. 타이피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창조주는 타이피에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배를 지으라고 말했다. 창조주는 그에게 부인과 각 동물의 한 쌍씩을 배 안으로 태울 것을 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홍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과 동물들은 산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산들도 마찬가지로 홍수로 잠겨 버렸다. 마침내 비가 멈췄다. 타이피는 비둘기를 내어 보냈을 때 돌아오지 않자, 물이 말랐음을 알았다.

미국(United States): 오지브웨(Ojibwe) 원주민들은 대략 AD 1400년 이래로 미국 미네소타에 살아왔던 종족으로, 성경의 내용과 매우 비슷한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협력하는 삶들이 지속되지 않는 시기가 도래했다.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 존경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다퉜고, 곧 마을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창조주인 기치 마니도(Gitchie Manido)를 매우 슬프게 했다. 그러나 그는 기다렸다. 마침내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창조주는 물을 사용하여 땅을 정화하기로 결정했다. 물이 일어났고, 세상은 홍수로 덮여서, 모든 창조물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소수의 생물체가 살아남았다.”

 증거 2. 지질학적 증거들

 창세기 7, 8장을 읽어 보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고 40주야 동안 격렬하게 비가 쏟아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을 미루어보면 전 지구적으로 온 땅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뜻이다. 홍수는 화석들, 특히 남아프리카, 브라질 등지에서 발견되는 수십억의 물고기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이 한꺼번에 묻혀 만들어진 화석들만으로도 증명되기에 충분하다. 화석에 있는 어떤 식물들은 그 색깔과 엽록소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물고기들은 놀라서 충격을 받고 갑자기 죽은 것 같은 모습들, 즉 지느러미들을 다 펴고 몸을 구부리고 몸부림치는 갑자기 죽은 듯한 모습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땅이 갑자기 뒤엎어져 묻혀서 공기가 차단되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독일에서는, 각종 다른 지역과 다른 기후에서 사는 물고기와 곤충들과 동물들이 한곳에 모여 몰사하여 함께 묻혀 있는 곳도 있다.

 또한, 석탄은 홍수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다. 석탄 10피트가 생기려면 100피트의 나무나 식물이 썩어야 가능하다. 곧, 땅에 묻혀 압력과 열이 오랫동안 가해져야만 한다. 현재 지구에 있는 석유와 기름의 매장량을 계산하면 엄청난 동물과 식물들의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최근 지질학의 발달로 지층과 지형의 모습들이 자세히 조사되면서, 지구는 과거에 대홍수와 같은 엄청난 격변을 겪었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 지구 대부분에 수백 미터에서 수백 킬로미터 깊이로 쌓여 있는 퇴적 지층들, 수조 개의 화석으로 멸종된 생물들, 세계 곳곳에서 강같이 흘렀던 용암들,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는 산들, 바다 속에 깊게 파인 해저 협곡들, 지구를 휘감은 해저 산맥들, 엄청난 넓이로 평행하게 쌓여 있는 지층들,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 생물의 화석들,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두터운 석탄층들, 온대 지역의 풀을 먹다 얼어 죽은 시베리아 매머드들, 지층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유물들, 오늘날의 모습과 똑같은 채로 발견되는 고생대, 중생대의 화석들 등등. 그러므로 최근 지구의 지층과 지형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정설과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지질학적 증거 5가지

 해수면보다 높은 곳에 있는 바다 생물의 화석들: 이 화석들은 바닷물이 대륙들 위로 침범했음을 가리키는 정확한 증거가 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모든 대륙을 덮은 암석 지층들에서 바다 생물의 화석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의 양 벽들(해발 1.6km 이상의 높이에 있는)에 있는 대부분의 암석층은 바다 생물의 화석들을 포함하고 있다. 화석화된 조개류들은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발견된다.

 급격하게 묻혀 있는 동식물들: 종종 대규모적인 화석 뭉치들과 정교하게 잘 보존된 화석들이 발견된다. 예컨대 수십억 개의 나우틸로이드(nautiloid, 고대 오징어) 화석들이 그랜드 캐년의 레드월 석회암(Redwall Limestone)의 한 층(layer)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 층은 대규모의 퇴적물(대부분이 석회 모래)의 흐름에 의해 격변적으로 퇴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의 백악(白堊, chalk)과 석탄층(coal beds)들, 물고기들, 어룡(ichthyosaurs)들, 곤충들의 화석들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다른 화석들은 과거에 한 번 땅이 격변적으로 파괴되었고 묻혔음이 입증되고 있다.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급속하게 퇴적된 퇴적 지층들: 전 대륙에 걸쳐 있는 암석 지층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런 지층의 물리적 특징들은 그것들이 갑작스럽게 퇴적되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의 타핏 사암층(Tapeats Sandstone)과 레드월 석회암층(Redwall Limestone)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에까지 이르고 있고, 심지어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 영국의 백악층(도버 해협의 백색 절벽)은 유럽을 횡단하여 중동까지 추적되고 있고, 또한 미국의 중서부와 서부 호주에서도 발견된다. 그랜드 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Coconino Sandstone) 안에 있는 경사층(사층리)은 10,000입방 마일의 엄청난 모래가 수일 동안의 거대한 물 흐름에 의해 퇴적되었음을 가리키는 증거판이 되고 있다.

 먼 거리까지 운반된 퇴적물들: 급속히 퇴적된 암석 지층들을 구성하는 퇴적암들은 먼 근원 장소들로부터 침식되어 빠르게 흐르는 물에 의해서 장거리를 이동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애리조나 주)의 코코니노 사암층(Coconino Sandstone)을 구성하는 모래는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인 북부 지역에서 침식되고 그곳에서부터 운반돼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빠르게 연속적으로 퇴적된 많은 지층: 암석들은 정상적으로는 휘어지지 않는다. 딱딱하고 부서지기 쉬워서 깨져 버린다. 그러나 곳곳에서 부러지지 않고 휘어져 있는 전체 지층의 층들은, 모든 암석 지층이 급격히 퇴적되었고, 암석으로 굳어지기 전에, 즉 아직 젖어 있어 휘어지기 쉬운 상태에서 습곡 되었음을 말해 준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의 타핏 사암층(Tapeats Sandstone)은 깨어진 증거 없이 직각으로 접혀져 있다.

 증거 3. 홍수가 남겨 둔 흔적, 잔류 지형

“잔류 지형”이란 오늘날의 자연적인 과정으로는 결코 형성될 수 없는 지형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지금의 환경과는 다른 상태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언더핏류(Underfit Streams): 언더핏류는 하상(Channel), 계곡 또는 준평원과 같이 현재의 과정으로는 형성이 불가능한 하천을 가리킨다. 이들은 현재 흐르는 물의 양으로는 현재 보여 주는 경사와 넓이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는 한때 엄청난 양의 물 유입이 있었던 환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건조 지역에서 발견되는 하계망(Drainage system): 잘 짜인 하계망은 비가 오는 지역에서 보여 주는 지형학적 특징이다. 그러나 건조 지역에서도 이러한 하계망이 잔류 지형으로 잘 발견된다. 미국의 모하비(Mojave) 사막에서는,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과거에 물이 흘렀던 흔적이 있는 건천(Dry Wash)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막의 잘 짜인 하계망으로는 페루의 아타카마(Atacama)와 캘리포니아의 데스벨리 사막(Death Valley Desert)이 잘 알려져 있다.

내륙 해안 절벽(Inland Sea Cliff): 잔류 해안 절벽은 과거에 해수면이 한때 육지보다 훨씬 높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러 곳에 많지만, 특히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 멕시코의 파자 캘리포니아, 뉴질랜드의 와이루 계곡에서 잘 발달한 해안 절벽을 관찰할 수가 있다.

빙하 지형: 빙하는 캐나다의 대부분, 북아메리카의 일부, 북유럽의 대부분, 뉴질랜드의 전 지역, 아프리카의 많은 부분을 덮었었다고 믿어진다. 오늘날의 조건에서 이러한 빙하의 잔류 지형을 형성시키는 예는 발견된 적이 없다.

 토양(Soil): 토양은 지형이라기보다는 단지 잔류 흔적(Relics)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잘 알려진 것 중에 보옥사이트(bauxite)와 래터라이트(laterite)가 있는데, 이들은 아주 특이한 환경에서 형성되는 것들로서, 알루미늄과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현재의 강우에 의해 이런 토양이 형성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창세기 6장 14-16절을 보면 노아의 방주가 어떠한 규모로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여기서 나오는 규빗은 길이의 단위로서 한 규빗은 성인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개인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시대마다 쓰이던
규빗의 단위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규빗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46cm에서 56cm 사이가 됩니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의 규모를 오늘날의
길이 단위로 환산하면 한 규빗을 가장 작게 잡아서 46Cm라고 해도 길이가 138m 폭이 23m 높이가 14m 정도가 되지요. 1규빗을 53cm로 할 때는 길이가 160m, 폭은
27m, 높이는 16m가 됩니다.

   이는 길이로 볼 때 축구장의 1.5배 정도이고 면적은 농구장의 20배 정도가 되며 기차의 표준화차 568량과 맞먹는 용량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 5백여 년 전에 이만한
크기의 방주가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아의 방주의 안전성입니다. 오늘날의 지식이나 기술로 볼 때에도 노아의 방주에 적용된 설계 비율이 너무나 안정적인
비율이라는 사실이지요. 이렇게 설계된 방주는 큰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노아의 방주에 적용된 설계 비율에 따라 전함을 설계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 전함은 지금까지 건조한 전함 중에서 가장 견고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또 세상을 뒤엎는 엄청난 홍수 속에서도 충분히 건재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뛰어났다는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방주의 설계 비율과 재료 등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다 들어가야 하고 40주야로 내리는 그 엄청난 비를 견뎌내며 382일 동안에 방주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율과 설계와 재료로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하게 아셨던 것이지요.

   여기서 왜 382일이라는 숫자가 나오느냐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비가 내리기 이미 7일 전부터 방주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 비가 내리면서 홍수가 시작되어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됩니다. 참고로 노아는 물이 완전히 거친 것을 확인하고도
57일 간을 방주에 더 머물렀습니다. 또 홍수 기간은 비가 시작된 때로부터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때까지로 계산하여 정확하게 만 1년 10일이며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에서 생활한
기간은 미리 들어가 있던 7일을 더하여 만 1년 17일이 됩니다. 따라서 382일이라는 날짜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노아의 방주는 이처럼 육적으로 볼 때 놀라운 점들이 많지만 영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잣나무를 사용하라 하셨는지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하신 데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방주 안을 상, 중, 하 세 층으로 나누게 하신 데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방주 곳곳에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물론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나무들을 자르고 다듬을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하고 나무를
옮길 수 있는 수레도 있어야 하지요. 또한 다듬어진 각각의 나무들로 짝을 맞추고 거대한 배를 지탱해가며 완성하기까지 그에 필요한 지식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이러한 지식과 기술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앞서 창세기 4장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가인의 후손 5, 6대에 이르게 되자 이미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정도에까지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 이상의 문명과 기술이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지요. 여기에는 발달된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영향이 컸습니다. 조상인 아담뿐만 아니라 에덴 동산 사람들과의 계속된 접촉을 통해 그들의 발달된 문명을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방주의 구조와 규모를 세세히 알려 주시고 또 발달된 지식과 기술이 있었다 해도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1. 의인 노아의 온전한 순종

   창세기 6:22에도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날 믿는 많은 사람들이 나도 하나님께서 그처럼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기 생각과 지식이 앞서고 또 이론이 동원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되지요.

   만약 햇볕이 쨍쨍 비취는 날에 제가 여러분에게 "우산을 준비하십시오." 말을 했다고 합시다. 지금 당장에는 여러분 대부분이 '나는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어' 생각하시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순종하지 못하는 분들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날이 이렇게 좋은데 왜 우산을 준비하라고 하시나?' 하며 아예 순종할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나중에 날이 흐려질 것 같으면 그때 가서 준비하면 되겠지'하며 생각을 동원하느라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아니면 행함으로는 순종을 하지만
속으로는 '날 시험하시나?'하며 마음에서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분도 있는 것이구요. 이밖에도 갖가지 이유와 핑계들로 인해 온전한 순종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방주를 지으라 한다면 과연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준행했던 것처럼 무조건적인 순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순종에는 어떠한 생각이나 이유, 변명이나 핑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상고해 볼 때에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같이 아무리 사람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는다 해도 무조건적인 순종을 했던 것을 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론과 틀을 철저히 깨Em릴 때만이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에도 오직 "아멘"과 "예"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순종이 나오려면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의인 노아를 택하여 그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셨던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홍수의
심판이 있었던 노아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마태복음 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노아를 택하여 방주를 짓게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누군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서 구원의 방주를 지을 의인을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노아의 때와 같이 실제로 방주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방주가 필요한 것이지요. 바로 교회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구원의 방주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하는 것이며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녕 깨어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교회,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

   그러면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방주의 안전성에 대해 잠시 설명하지요. 국가 출현 기관인 해사 기술 연구소는 1992년 6월부터 한국 창조과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 공학적 입장으로 접근하여 실험하고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 시험 및 성능 평가 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세계 조선 2위 국가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방주의 길이를 1/50로 축소하여 테스트용 방주를 만든 후에 이를 인공적으로 만든 다양한 높이와 강도와 속도의 조류 그리고 파도와 풍랑과 바람의 조건 하에서
다각적으로 실험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 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선박보다 뛰어난 안전성을 갖고 있는 배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관련 기사가 1993년 2월 17일자 국민일보에 실렸지요. 노아의 방주의 용량은 1만4천 톤에 이릅니다. 이러한 용적의 방주는 평균 크기의 양을 12만 5천 2백
8십 마리나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서 당시에 살던 동물들의 크기를 양의 크기로 평균해서 계산할 때, 모든 동물들과 그들의 식량까지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구원의 방주로서 지어졌지만 동시에 노아의 방주에는 앞으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는 홍수의 심판이 주는 교훈을 어떻게 마음에 명심해야 할지에 대한 영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지요.


   1)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는 재료로서 잣나무를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잣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줄기가 곧게 되는 특성을 지니며, 재질이
우수하고 색상이 아름다워서 건축 기구, 선박제 등에 사용되지요.

   노아의 방주는 장차 있게될 엄청난 홍수를 견디며 수많은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와서 부딪칠 수도 있고, 수없이 많은 파도들이 와서 부딪치게 되지요. 이런
환경 속에서 견뎌내려면 방주의 재질은 매우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단단한 재질을 지닌 잣나무를 사용하여 방주를 지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도 세상이라고 하는 험한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인 천국에 안전하게 이르기 위해서도 영적으로는 잣나무와 같은 성질이 필요하지요. 수많은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로 잣나무와 같은 강하고 단단한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성품이 강하고 단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변개함이 없는 곧은 중심을 말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방주를 짓는데 사용하라 명하신 잣나무는 영적으로 변개함이 없는 단단한 중심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변개함 없는 곧은 중심을 가질 때만이 강하고 단단한 잣나무로 만든 방주가 홍수를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이 마침내는 새예루살렘에 안전하게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너를 위하여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곧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방주처럼 영적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방주는 영적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심판의 부활이 아닌 생명의 부활로 나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모두가 홍수에
휩쓸려 수장되었던 것과 같이 누구든지 진리에서 떠났을 때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2)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되 간들을 막으라고 명하셨는데 이는 칸을 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간들을 막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즉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며 빛과 어둠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반드시 이러한 분별의 능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못하면 자칫 소경의 인도를 따라 함께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분별하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진리로 깨끗하게 변화되어 있어야
온전한 분별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영적인 신령한 분야는 여러분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만이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3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이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는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만이 신령한 영의
것들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명하셨습니다. 육적으로는 역청을 칠하는 것이 방수 작용을 위한 것입니다. 나무와 나무를 접해 놓은 틈새를 통해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작은 틈새까지라도 역청을 발라 막는 것이지요. 이는 영적으로 세상과 함께 하며 살아가되 세상의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방주의 겉은 항상 물과 닿아 있어야 하는데 이때 조그만 틈새라도 생겨서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밀려들어오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 경작 받는 동안 우리는 어차피 세상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되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결코 세상의 물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겉모습 속에서도 결코 세속적인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되지요. 우리는 항상 영육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청을 방주 안팎에 칠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될 것을 깨우쳐주시는 것입니다.


   3)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창도 내고 문도 내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노아를 통해 인류 역사의 계보가 새롭게 시작되어 수많은 자손들이 퍼져나가게 될 텐데 그런 속에서 세상을
향해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역청을 바르라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처럼 우리가 세상의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창과 문을 열고 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세상을 피하고 등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교회들이 세상과 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 다가가지도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19-22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코자 사도 바울은 이처럼 각 사람에게 맞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아무리 거룩한 모습을 하고 충성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가정에 돌아가서, 직장에
돌아가서, 또한 세상에 나가서는 빛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세상의 빛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소금으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이지요. 교회 안에서만 섬기고 희생하는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태복음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한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지요. 또한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여러분이 되어짐으로 초대교회와 같은 놀라운 부흥도 일어나는 것이구요.


   4)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를 삼층으로 나누게 하신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삼위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 마음에 삼위 하나님이 항상 계셔야 할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새로운 인간 경작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인간 경작의 역사 또한 크게 세 시대로 구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사역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가 있게 되고, 다음으로는 주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셔서 사역하시는 주님의 시대가 있게 되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 경작의 마무리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구요.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인류가 장차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성령님의 시대를 거치며 이 땅에서 경작받게 될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강해' 말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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