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관 입타와 인신제사

2015. 3. 20. 오후 3: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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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관 입타와 인신제사

 

판관기 11장에는 판관 입타가 서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두 달 뒤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자, 아버지는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쳤다."(판관 11,30-31.39)

판관들의 시대는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사는 시기인데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이때에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시켜서 막아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번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역겨워하신다고 다른 곳에서는
말씀하시는데 입타의 딸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은 어째서 허락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판관 입타의 딸을 번제물로 바친 사건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 부분에
실린 것인가요?

물론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먼저 바치라고 하셨고 ...
입타의 경우는 자신이 바치겠다고 한 것은 다르지만 하느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릴
정도면 잘못된 서원도 하느님의 영을 통해 바로잡아 주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굳이
입타의 딸을 번제물로 받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한님성서연구소의 답변입니다. http://biblicum.or.kr/bbs/board.php?bo_table=QnA&wr_id=1498&page=0

 

모세오경에는 인간 제사를 금하는 율법들이 다수 나타납니다(레위 19,21; 20,2=5; 신명 18,10).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암암리에 인신제를 행해 왔지요. 이스라엘의 인신제는 페니키아 ‘티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암몬'이나 '모압'과(2열왕 3,27) 같은 주변 민족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고요.

예루살렘 도성 남쪽에 자리 잡은 “힌놈의 골짜기”가 대표적인 인신제의 현장이었지요(2열왕 16,3; 21,6; 23,10 등). 예레미야는 이곳을 “토펫”이라고도 불렀습니다(예레 7,31). 특히 골짜기에 지어진 제단은, 지하에 가까운 그 위치 때문에라도 죽음에 결부된 의식이 주로 치러졌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인들이 사용하던 제단을 하느님 제단으로 바꾸기도 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가나안의 악습이 되살아나 인신공양과 결부되거나, 우상 숭배 장소로 타락한 듯합니다. 물론 기원전 622년에 요시야 임금이 종교 개혁을 단행한 후, 예루살렘 성전 이외의 제단들이 모두 부정해집니다(2열왕 23,8). 그러나 종교 개혁의 효력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관습이 도로 부활했던 것 같습니다(에제 16,20-21; 20; 23,37.39 등 참조).

게다가 에제 20,25-26에는 이스라엘이 인신제를 지내도록 하느님이 허락하셨다는 구절도 나오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이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 율법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 성향에 맞춰서 생명의 울법을 죽음의 율법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뜻합니다. 곧,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맏아들을 바치는 나쁜 율법을 허락하신 이유는, 죄를 짓게 하여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서였지요. 이것은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시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고(탈출 11,9-10), 당신이 주님이심을 깨닫게 한 사건과도 유사합니다.

질문하신 판관 입타의 사건도 하느님께 인신제를 드린 것으로 묘사되어, 의아함을 자아냅니다. 특히 판관 11,31에는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록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을 읽어 보면,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무엇이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꼭 ‘사람’이어야 한다는 어감은 아니지요. 그런데 입타의 예상을 깨고 사랑하는 외동딸이 나왔으니, 그 절망은 대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겠지요.

성경은 필요 없는 부분에 대한 말은 최대한 아끼고, 정말 중요한 사실만 언급합니다. 그런데 판관기에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그것도 매우 자세하게 실려 있다는 사실에는 그 기저에 깔린 의도가 있다고 보입니다. 아마 판관기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암암리에 유행하던 인신제를 비판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곧, 인신제를 하면 어떤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판관 입타의 절망과 아픔을 빌어 다른 이들이 간접적으로라도 깨닫고 느끼도록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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