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중요한 시대와 사건들

2012. 1. 27. 오전 8: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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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중요한 시대와 사건들

성조시대 :
구약의 시초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도 없었고, 야훼께 선택된 백성도 없었습니다. 그때 야훼께서 만백성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야훼께서는 이미 늙어버린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에게 인간적 안목으로는 불가능한 아들을 기적적으로 낳게 해주십니다. 그 아들이 이사악이었고, 이사악의 아들이 야곱이었으며,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그 열두 지파의 공통 선조인 야곱에게 야훼께서 내려주신 이름입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의 열두 아들은 정착할 땅이 없는 유목민이었는데, 그들 중 하나였던 요셉을 매개로 그 일족은 살길과 일자리를 찾아 이집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는 대략 기원전 1800-1700년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
그로부터 세월은 흐르고 요셉과 그의 행적을 모르는 이집트의 새로운 왕은 히브리인들을 박해하며 노예로 부리기에 이릅니다. 이때 야훼께서 히브리 사람들이 노예생활에 허덕이는 것을 굽어보시고 이집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십니다. 이때가 어림잡아 기원전 1250년경입니다. 그리고 나서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이제 야훼께서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신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야훼 하느님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때 복된 미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복시대와 판관시대 :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목적지인 약속된 땅에 도착합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선택된 백성이 어떻게 약속된 땅을 차지하게 되는지를 묘사해 줍니다. 여호수아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물로 주시기로 한 땅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이야기하며, 판관기는 어렵고 힘든 정착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판관들은 보통 전쟁터에서 몸소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이 판관이라고 불린 것은 그들이 억압자들을 거슬러 이스라엘의 권리를 확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소 산발적으로 지파들마다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이 구약의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00-1000년으로 봅니다.

통일왕국 :
판관들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사무엘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수행한 두드러진 역할은 왕을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근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왕을 갖고 싶어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직 판관의 전통에 머무르게 되며,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만 영향력이 있고, 모든 지파에 영향력을 갖지 못합니다. 사무엘은 이어서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무엘과 사울이 죽은 다음에라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통치기간 중에 수없이 전쟁을 치르고 영토를 확장했고, 여부스족이 살고있던 도시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자기 수도로 삼아, 이곳을 근거지로하여 부족다툼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든 지파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어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다윗은 또한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서 명실공히 예루살렘을 야훼께서 인간 세상에 당신 거처로 마련하신 도시로 만들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한 다윗 가문에 구세주(메시아)가 태어나리라고 야훼께서 약속하시기에 이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을 그야말로 작은 제국으로 만들게 됩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거대한 궁전과 성전을 세웠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종교생활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왕국의 분열 :
솔로몬의 통치는 이스라엘 왕국을 번성케 하기는 했지만 궁전과 성전 등의 대규모 공사로 부역과 세금을 많이 부과해 민심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죽자, 기원전 920년경 북쪽 10지파들은 따로 떨어져나가 북부에다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남쪽 유다 왕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제국으로부터 시달릴 대로 시달렸습니다. 그 결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에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멸망했고, 그들 중 많은 숫자가 민족 혼합 정책에 따라 이스라엘 영토에서 추방되어 다른 나라로 유배당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다음, 성서 저자는 남쪽 유다 왕국의 두 왕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히즈키야(기원전 715-687)와 요시야(기원전 640-609)가 그들입니다. 두 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남 북왕국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야훼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풍요다산을 보장한다는 가나안의 신들을 함께 섬기는 등의 종교 혼합적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성전을 복구하면서 신명기가 발견됨으로써 열성적으로 진척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왕이 사라지자 모든 사태는 원상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바빌론 유배 :
남쪽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7년에 아시리아를 누르고 부상한 바빌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하게 됩니다. 남왕국 주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에서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자, 그 대신 안식일에 함께 모여 일반적인 전례와 공부를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회당예절의 기원입니다.
이때 그들은 자기네 구전 전승들을 보다 결정적인 형태로 만들었고, 주변 이방인들의 믿음 앞에서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자각을 예리하게 다듬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귀양살이하는 동안 자기네 민족의 동질성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복 (귀환) :
그럴 즈음, 기적적인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빌론 제국이 페르샤인들에게 멸망당하고, 페르샤왕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유배당한 민족들을 제 나라로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사제 에즈라와 통치자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 회복은, 유배 후 꼭 반세기만인 기원전 538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에 의해 히브리어 성서들이 마무리 지어졌고, 그리스어 구약성서는 그보다 조금 늦게 번역되어 나왔으며, 그런 상태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몇 세기를 더 버티게 됩니다.

헬레니즘시대 :
페르샤 제국도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곧 바로 세 조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들의 통치아래 거의 보편화된 문화가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입니다. 헬레니즘 제왕들 중 하나인 안티오쿠스 4세는 유다인들에게 헬레니즘 생활 양식을 강요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리스 신들을 경배하고, 자기네 생활 양식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 정책에 굴종한 유다인들도 많았지만, 나머지는 기원전 167년 마케베오 형제의 영도아래 그 정책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3년 뒤 그들은 승리하여 성전을 탈환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케베오 혁명기간에 로마 제국과의 동맹이 이루어졌지만, 기원전 63년에 왕위와 대사제 지위를 놓고 두 형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로마는 폼페이우스를 시켜 스스로 중재역을 맡고 나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팔레스티나에서 정치 권력자들은 로마의 꼭두각시들이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후로 유다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머니 속 성서박사 시리즈 1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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