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공인(公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공화당 상원의원들과의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팔레스타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주변 4개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 ap=연합뉴스
그러면서 “전임 대통령들은 공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지킨다”며 “오늘의 조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 추구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과 지속적인 평화협정을 위해 오래전에 진작 했었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수도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권국가이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평화를 얻는 데도 필요한 조건”이라며 “현실에 대한 인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옳은 일”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평화협정 촉진에 도움이 되도록 깊이 헌신할 것이며, 이러한 협정을 견인하기 위해 권한 내에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양쪽 모두 동의한다면 미국은 ‘2국가 해법’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국가 해법’은 1967년 정해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각각 건설해 영구히 분쟁을 없애자는 평화공존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중동지역에 파견해 “극단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중동 전역의 파트너들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국무부에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작업에 즉각 착수토록 지시했으나, 대사관 이전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대사관 이전을 6개월 보류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 대통령은 1995년 제정된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따라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동안 국익과 외교적 이해관계 등을 이유로 이를 6개월마다 보류하는 문서에 서명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과 미국대사관 이전을 공식 천명한 것은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미국의 외교 정책을 뒤집는 행동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중재 노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 세계의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아랍국가와 이슬람권이 극력 반발하는 등 중동지역 정세의 불안정성이 고조되면서 테러 등 유혈사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이번 결정을 질타해 미국이 고립을 자초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이자 평화협상 대표는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2국가 해법’을 파괴했다”고 성토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https://youtu.be/hzyk9g_ohmo ☜클릭(예루살렘의 하느님 시간표 )
트럼프 (trump)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레위25,9-10)

오는 9일 회원국 전체에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발표로 광범위한 반대 시위가 예상된다며 예루살렘, 요르단서안 및...
더 빨리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직후 “역사적인 결단”이라고 찬사를 보낸바 있다. 한편...
것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우방국인 영국을 포함해 주요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에 우려를 표시했으며 미 국무부도 중동 지역에 테러 위협이 높아질 거...
약속했다. 이 날 모로코 국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대사관 이전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의사에 대해 "예루살렘은 현재의 정치적 지위를 그대로 보존해야...
[이재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행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위치하고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면서...
지난 8일에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
이스라엘주재 전 미국 대사들을 접촉한 결과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을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은 `외교적 실책`, `자학적 조치...
관문인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한결같이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비판에 열을 올렸다. 반미 시위가 열린 올드시티 주변을 아들...
<앵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의 후폭풍이 중동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어제(11일)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의 원인도...
등이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선언 이후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용기있고 정당한 결정...
팔레스타인을 유태인들의 고향으로 만드는 것이 19세기 말 이래 시오니즘주의자들의 목표였으나, 1917년이 돼서야 밸푸어 선언을 통해 그 견해가 공식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다. 선언서에는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집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1936년 필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지구를 유태인 주와 아랍인 주로 나눌 것을 제안하였으나, 이 안은 정부가 진행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이유로 기각당했으며, 부분적으로 1936년부터 1939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반란의 이유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증가하는 폭력의 추세 속에,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에게로 넘겼다. 그 결과 유엔 총회 결의 제181호가 통과되었는데, 이 안건은 팔레스타인을 유태인과 아랍인으로 나누는 분할 계획이었다. 인구의 82%를 차지하는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 지구의 56% 가량 되는 땅을 받으며, 대신 유엔 관리 지역으로 분류된 예루살렘은 제외되었다. 대부분의 유태인들이 이 계획을 받아들였으나, 아랍인들은 반대하였다. 1947년 11월 29일, 이 안건은 유엔 총회에서 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찬성 33표 대 반대 13표, 기권 10표였다. 아랍 국가들 (모두 이 안건에 반대함)은 유엔 총회가 해당 국가의 인구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안건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문제 삼으면서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일을 가져갔으나, 결국 패소당하였다. 분할은 영국이 지배 영역에서 철수하는 날인 1948년 5월 15일부터 실행되었다. 당시 영국은 이 계획을 양쪽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었다.
독립 선언서의 서명이 끝난지 11분 후, 트루먼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였으며,[10], 이어 유엔 분할 계획에 반대했던 이란의 샤 모함마드 레자 팔라비를 비롯해, 과테말라, 아이슬란드, 니카라과, 루마니아, 우루과이에서도 국가를 인정한다 발표하였다. 1948년 5월 17일 소비에트 연방은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였으며,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아일랜드와 남아프리카가 뒤를 이었다.[11] 미국은 몇 달 후인 1949년 1월 31일에야 공식적으로 국가를 인정하였다.[12]
독립 선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에는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군들이 들이닥쳐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에서는 “밀하마트 하아츠마우트 (מלחמת העצמאות)”, 즉 ‘독립 전쟁’이란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6월 11일에 정전 협정이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7월 8일 공격이 재개되어 18일까지 이어졌고, 이후 10월 중순에 다시 시작되어 1949년 7월 24일 드디어 시리아와의 휴전 협정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독립 상태를 유지하였으며, 1947년 유엔이 분할 계획을 냈을 때에 비해 국토를 대략 50% 정도 증가시켰다.
독립 후, 임시 정부가 재성립되어 1949년 1월 첫 선거가 이루어질 때까지 새 국가의 정부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
[요약]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은 bc 13세기말로 추정된다. bc 10세기 중반 번영을 누린 후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왕국은 bc 722년 멸망했으며, 유다왕국은 bc 587년 바빌로니아인의 침략을 받았다. bc 141년 독립했지만 이후 로마·이슬람교도·십자군·오스만제국 등에 점령당했다.
1947년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으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전쟁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가자지구 등의 팔레스타인 자치를 이행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현재 가자지구와의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적어도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bc 10000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선형(線形)문자의 개발이다. 선형문자는 bc 2000∼1000년에 가나안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찾아냈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때는 bc 13세기말경으로 추측되며, bc 1550∼1200년에는 이집트인들이 지배했다.
해양 민족들의 출현으로 아시아 속국들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팔레스타인에서는 펠리시테인들이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팽창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bc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했으며,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이스라엘로 알려진 북왕국과 유다로 알려진 남왕국으로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아시리아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했으나, 유다 왕국은 bc 625년까지 아시리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 bc 587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다 왕국을 침략했으며 많은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했다(→ 바빌론 유수).
키루스 2세(bc 550∼529) 때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뒤이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 지역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도와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의 성전 모독에 반발한 유다 마카베오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bc 141년 하스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었다. 그러나 bc 65년 왕족의 내분으로 내란이 일어나 로마 제국이 개입하게 되었는데, 로마 점령기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는 ad 30년경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2차례의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135년 마지막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은 극소수 집단으로 위축되어 이스라엘은 더이상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란사, 로마사).
그뒤 팔레스타인은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도교 성지 보호로 인해 어느 정도 번영을 누렸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691년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세웠다. 그결과 예루살렘은 3대 주요종교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은 1100∼1291년 이슬람교도들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었으며, 1517년에 오스만 제국에 넘어갔다. 그뒤 1798∼99년 일시적으로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고 다시 이집트의 지배 아래 들어가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았다. 무하마드 알리를 통해 서유럽의 영향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1840년 다시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9세기 후반 팔레스탄인에 유대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가 시작되어, 1882년 최초로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이 세워졌으며, 1917년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영국이 1918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를 승인받아 정치적 책임을 떠맡게 된 후 이 정책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초 아돌프 히틀러의 박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늘어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이에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거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시온주의 국가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가운데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고, 이스라엘과 이집트·트란스요르단(뒤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중동전쟁). 이스라엘이 1967, 1973년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중동은 지금까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1967년 전쟁을 전후로 팔레스타인 국가와 그 영토 내의 이스라엘 점령지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로 여러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졌다.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속한 게릴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7년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이 '인티파다'(intifadah : '봉기'라는 뜻)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 당국은 1992년 이후 아랍의 여러 국가와 팔레스타인 대표들과 직접 평화 교섭에 나섰다.
이듬해 이스라엘과 plo는 5년 동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점차 확대 이행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 요르단과 평화협상을 맺었다(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