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 강의 - 김한승 신부
6. 전례 안에서 악기의 사용
7. 전례 오르간 음악 ( I )
8. 전례 오르간 음악(Ⅱ)
9. 그레고리오 성가(Ⅰ)
10. 그레고리오 성가(Ⅱ)
6. 전례 안에서 악기의 사용
초대교회에서는 신앙인들의 믿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말과 노래에 우월성을 두었기 때문에 전례에 악기를 도입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악기들은 크고 자극적인 소리로 전쟁이나 잔인한 놀이,
야단법석을 떠는 축제 등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전례에 악기가 쓰여지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 동기가 되었다.
기원 후 1000년경 교회는 전례 안에서 회중과 성가대 또는 독창자의 노래를 보좌하고,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청취음을 통해 회중들을 전례에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조건으로 악기의 사용을 허락하기에 이른다.
1903년 비오 10세 교황은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 악기로 그 첫 번째 자리에 오르간을 두었고,
거룩한 전례와 장소의 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속되고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면 오르간 외에
다른 악기들도 관할지역 주교의 특별한 허락하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은 불규칙적으로 적용되어 오다가,
1928년 비오 11세 교황이 회칙을 통해 '우리가 옹호해야 할 것은
악기를 수반하는 노래가 아니라,
성전에서 다시 울려야 할 살아있는 목소리이다.'라고 재천명하며 악기의 사용으로
목소리가 가리워지지 않고 노래와 의식이 끊기기 않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음악 지침서'에서 오르간에 대해 찬사를 보낸 다음,
다른 악기들도 전례음악의 높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이며,
그 첫 자리에 현악기를 두었고 오르간 외에
다른 악기들이 전례에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게 제시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가 중요시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목소리로 하는
찬미가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유일한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악기는 부차적인 것이며, 악기의 용도는 노래를 돕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기술적으로는 더 쉽고 영성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이중적 결과에 의해
전례에 사용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악기의 사용은 그것이 성전의 위엄에 상응하고 전례 분위기에 적합한지,
신자들로 하여금 전례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지 신중히 판단되어야 한다.
악기의 잘못된 사용으로 신자들이 오히려 분심에 빠지고 혼란스러워해서는 안된다.
7. 전례 오르간 음악 ( I )
오르간의 어원은 '조립된 도구'라는 뜻의 그리스어 Organon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세에는 '교회에 있는 악기'를 가리켰고 그뒤 현재의 파이프 오르간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오르간은 2단 이상의 손건반(manual)과 발건반(pedal)을 갖추고 있고,
파이프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만을 말한다.
파이프 오르간은 교회에서 전례의식에 사용하는
'교회 오르간'과 극장에서 연주용으로 사용하는 '극장 오르간'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손건반이 하나뿐인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포지티브 오르간'이라 하고,
더욱 작아서 손쉽게 이동이 가능한 파이프 오르간을 '포르타티브 오르간'이라 부른다.
또 다른 모습의 오르간은 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금속으로 만든
작고 탄력성 있는 얇은 조각을 한쪽만 고정시켜 놓고 공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다른 쪽을 진동시켜 발음원으로 삼는 '리드오르간'과, 전자기기를 이용하여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내는 '전자 오르간'이 있다.
파이프 오르간의 기원은 기원전 수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팬파이프의 일종이었던 '시링크스'가 오르간의 전신이었는데,
이것은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 관을 둥근통 둘레에 꽂고
통 한모퉁이에 뚫려 있는 불구멍으로 숨을 불어넣거나
들이마심으로써 죽관 맨 끝에 장치된 쇠청이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
우리나라 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생황'과 흡사한 것이었다.
기원전 265년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크테시비오스가
물의 힘으로 공기를 보내어 손으로 판을 열고 닫아 파이프를 울리게 하는 악기를 발명하였는데
이것이 '수압 오르간'이라 불린 최초의 오르간이 되었다.
수압 오르간은 뒤에 아라비아인들에게 제작법이 전해져 발달되었고,
그 기술은 그리스 지방으로 전파되어 여러 가지로 개량되면서 물을 사용하지 않고
송풍장치로 연주되는 오르간이 생겨났으며,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는 그리스 각지에서 이 악기를 수입하여
교회음악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인 오르간의 역사는 1200년 무렵부터 기록되기 시작하며,
13∼15세기 전반에 걸쳐 소형 오르간에서 수십 줄의 파이프를 배음관계로 연결한
대형 오르간까지 나타나게 되었고,
17∼18세기에 근대 오르간의 기초가 완전히 확립되어 오르간 음악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8. 전례 오르간 음악(Ⅱ)
교회는 전통적으로 전례에 사용하는 악기로 파이프 오르간을 크게 존중하며,
오르간 소리는 전례의식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신자들의 영혼을
하느님과 천상에로 강하게 들어올리며 교화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전례헌장119항).
특별히 성가를 동반하는 오르간의 사용은 목소리를 받쳐주고,
참여를 도와주며, 회중의 일치를 더욱 도모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례에 대한 오르간의 기여는 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로마식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항상 유지해 왔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간략하게 언급되었던 오르간과 그 사용은
비오 10세 교황의 인준으로 주교가 드리는 전례서를 통해 알려졌고,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교회의 전통악기로 지정되었으며,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전례 안에서 오르간 연주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교 음악의 일반적인 모든 규범 아래 종속된다.
즉, 전례의 기능적인 모든 법을 존중해야 하며,
오르간 연주가 경건하게 전례행위를 따르기 위해서 전례시기의 특성,
전례와 연주의 본질, 그리고 모든 모든 전례규정에 잘 적용되어야 한다.
오르간의 독특한 기능은 노래를 전주곡으로 시작하고, 후주곡으로 지속하며,
노래가 길게 지속될 때 짧은 간주곡으로 전체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이다.
오르간의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연주자의 탁월한 예술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오르간의 특권은 전례를 거행하기 전이나 후에 연주를 통해
성전을 살아있는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회중을 모아 들이도록 돕고,
찬미에로 그들을 초대하며, 깊은 묵상이나 감사행위의 기쁨을 그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오르간은 전례의식에 자신을 결혼시킨 것'이라고 말했듯이
노래를 수반함으로써 전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지,
연주 그 자체가 전례에 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르간 반주자들은 독주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독창자나 성가대나 회중의 노래를 돕기 위해 명확한 전주곡으로 음을 잡아주고,
리듬의 진행을 알려주며, 회중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엄격하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고도의 연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9. 그레고리오 성가(Ⅰ)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단성부 전례성가이다.
그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나고그(유대인 회당)에서 시편 낭송이나 복음을 읽기 위해
특별한 음율이 요구되었는데, 그에 따라 형성된 시편창(Psalmodia)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초기의 성가는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발전하여 밀라노와 로마에 전파되었고,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590-604년 재위)에 의해 정비되고
완성되어, 9세기에 와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리우게 된다.
그 뒤에도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쳐 19세기 후기부터 다시 부흥되기 시작하는데,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발간된 바티칸판(Editio vaticana)성가집이 기본이 되어,
미사의 성가곡을 모은 그라두알레(Graduale, 1908)와
미사 이외의 성무일도의 노래를 모은 안티포날레(Antiphonale, 1912년)가 발간되기도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사는 거의 모두가 라틴어 산문이며,
시편이 중심이 되어 있으나, 미사 노래에서는 시편은 극히 단편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편에 의하지 않고 신약이나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에 의거하는 것도 있고,
전혀 성서에 의하지 않고 새로 만들어진 것도 있으며,
운문으로 된 것도 있다.
기보법은 4선 보표 위에 로마사각악보(nota quadrata romana)로 적혀 있다.
음자리표에는 C와 F의 두 종류가 있어,
절대음고가 아닌 상대적인 것을 표시하여
노래하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조옮김을 할 수 있다.
조성은 여덟 가지 교회선법이 있으며, 모든 곡의 첫 머리에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다.
또한 전음계적 음악으로 인위적인 반음요소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연적인 반음(미-파,시-도)만 사용한다.
현대음악처럼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리듬이 아닌,
자유로운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용언어인 라틴어의 악센트와 잘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평온한 느낌과 단순함을 갖고 있어서 기도와 전례에
가장 적합한 음악으로 인정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헌장 116항에서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전례의 고유한 노래로 인정한다.고 언급하며,
라틴어로만 가능했던 전례집전을 각 나라의 고유언어로 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민중적 성가나 민족적 전통음악도 존중하도록 지시하였다.
10. 그레고리오 성가(Ⅱ)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는 가톨릭이 전파되어 있던 모든 지방의 구전성가들을 수집하고 정비하여 가톨릭교회의 전례성가로 완성한 장본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란 이름도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경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고르디아누스와
그의 아내 실비아 사이에서 탄생했다.
그의 가문은 이미 두 교황을 배출한 귀족가문이었고,
그는 일찍부터 법률, 수사학, 토지관리 등 훌륭한 교육과 경험을 쌓았으며,
로마의 행정장관이 되어 도시방어, 식량수급, 재정관리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 자신의 저택을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바꾸고,
재산을 여러 수도원에 나눠주며, 자신도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사로 지내게 된다.
당시 교황 펠라지우스 2세(579-590년 재위)는 그를 수도원에서 불러내어 부제로 서품하고,
교황의 특사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한다.
그는 그곳에서 정치 및 종교문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배웠고,
당시 동로마 제국에서 운영되고 있던 전례음악 학교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로마에 음악학교를 설치하는 동기가 된다.
다시 로마로 돌아온 그는 테베레 강의 범람으로 발생한 전염병에 의해
펠라지우스 2세 교황이 선종하자 원로원과 성직자들의 선출로 교황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는 교황 재직시 겸손과 사랑, 중용과 재치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특별히 전례음악에 관심을 갖고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그는 로마 교회의 음악,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성가, 동방 교회의 성가,
그리스와 교류가 많았던 남부 이태리의 성가 등을 수집하여 교회력에 의해 정리하고
한 권의 책으로 편찬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티포나리움'(Antiphonarium)이다.
또한 전례음악의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음악학교Schola Cantorum)을 설립하여,
그곳에서 교회음악과 교회학문을 교육하였고,
수료자 중에서 선발하여 사제로 서품을 주기도 하였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가톨릭이 전파된 여러 지역의 전례와 전례문,
전례음악을 연구하여 그레고리오 성가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바탕이 되게 하였으며,
그 스스로가 새로운 노래를 위한 작사도 하며 전례음악의 발전에 혼혈을 기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