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의무를 지닌 신앙인
"신부님, 아무리 생각해도 세례성사를 받지 못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교리시간에 어떠한 큰 죄라도 뉘우치고 용서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제가 지은 죄는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전에는 별로 죄의식이 없었는데, 성당에 다니면서 죄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되자 저는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보좌 신부 때의 일입니다. 세례성사를 앞두고 예비신자들과 마지막 면담을 할 때에
한 자매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잇지 못하는 그분에게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한참 후, 그저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저도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 자주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주님, 저는 그분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다행히 며칠 후, 그분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세례성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마음의 변화 중 하나는 죄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즉 과거에는 종종 지나쳤던 말과 행동들이 바로 ‘죄’였음을 깨달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죄를 의식하고 깨닫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며, 교회는 죄인들이 용서를 체험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더더욱 주님과 교회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가끔 신앙인이 너무 독선적이고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 스스로도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고고하게 사는 천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 앞에 죄인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 점을 깊이 깨우쳐 끊임없이 회개하는 행위입니다.
신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을 자신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교회의 세례가 구원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결코 특권이나 권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끊임없이 독선과 아집,
질투와 시기심을 버리고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는 복음적인 삶에 대한 요청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하늘의 비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립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잘것없는 이웃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의무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 허영업 마티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