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성화 -대립물의 투쟁 법칙 양성일 신부
고해소에 들어가서 고백을 듣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기쁨으로 성당에서 활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활동하는 신자들 간의 불화로 마음이 불편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꽤 계시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활동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진대, 점점 신앙생활이 버거워지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 볼 때 우리 인간은 아직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 불완전성 때문에 다툼이 있다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기쁨을 잃어버린 단체 생활을 왜 하십니까?
레지오 활동을 위한 봉사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가 아닌 보고를 위한 봉사가 자신의 영적 발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동시키는 많은 명언과 어록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개인의 체험에서 나왔건 사색에서 나왔건, 우리들을 공감시키고 웃음 짓게도 하고 울게도 만듭니다.
‘대립물의 투쟁의 법칙’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이론은 어떠한 대립된 두 가지 사상이 서로 충돌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서로 발전해 나아간다는 이론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여러분들이 정말 미워하는 원수같은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도록 하지요. ‘대립물의 투쟁의 법칙’ 에 따르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미워하는 사람과 나는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내 발전을 위해서 그 사람과 일부러라도 충돌을 일으켜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변화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투쟁하지 않고도 우리를 발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5,44)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참으로 야속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얼굴 보기도 싫은 사람을 사랑하라니, 어찌보면 이런 어려운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실천하기 너무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어떻게 한낮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완전함 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쉽게 넘어가 알아채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된다는 것은 어림도 없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오늘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대로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원을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림 세상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원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손바닥만한 작고 완벽한 원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 작지만 완벽한 원처럼 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크기만 달랐지 완벽한 것은 큰 원이나 작은 원이나 똑같습니다.주님께서는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주님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나에게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일지라도 주님 사랑은 그 사람에게도 미치고 있습니다.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최고일 것입니다. 그것을 한 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다가간다면 그 사랑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원을 당장 그릴 수 없다면 더 작은 원부터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크게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주님의 자녀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을 마무리하면서 정말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향해 작지만 완벽한 원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대립물은 투쟁함으로써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감으로써 발전되는 것입니다. 아니 완성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