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와 독일천주교 신부 아담샬의 비화(上)

2006. 7. 11. 오전 10: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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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와 독일천주교 신부 아담샬의 비화(上)

"이 교리는 우리들 지식의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왕세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국가의 운명이 크게 바뀐 사례는 흔치 않았지만 조선시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경우는 다르다.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인조의 대를 이어 등극했다면 적어도 조선후기의 역사 특히 일본과의 개화경쟁에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주교의 구원의 손길을 버린 죄와 벌이 바로 이같은 결과를 낳게 했다.

 

 

 ◇독일 예수회 신부로 중국에서 활약한 아담 샬(중국식 이름은 탕약망(湯若望)
◇천주교 구원의 손길 버린 죄와 벌=우리 역사에서 왕세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국가의 운명이 크게 바뀐 사례는 흔치 않았지만 조선시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경우는 다르다.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인조의 대를 이어 등극했다면 적어도 조선후기의 역사 특히 일본과의 개화경쟁에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현세자의 비극은 개인적 삶의 비극과 함께 역사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부왕 인조(仁祖)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 왕가의 비극을 국가의 비극으로 연장시킨 것이다. 국제적 감각과 영특한 자질로 군왕이 될 큰 그릇이었던 소현세자는 미처 뜻을 펴보지 못한채 33세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독살당한 것이다. 그러므로써 천주교와 서양문물이 조선에 들어 올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소현세자는 1612년 인조의 장남으로 사가에서 태어났다. 인조반정과 함께 세자로 책봉되고, 정묘호란 때에는 전주에서 남도의 민심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와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삼전도의 굴욕적 항복을 부왕과 함께 겪고 자진하여 청나라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잡혀갔다.

볼모가 된 소현세자는 함께 잡혀온 봉림대군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봉림대군이 부왕과 조정의 뜻에 따라 청나라를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며 분노와 증오의 세월을 가슴에 쌓으며 보낸데 비해 소현세자는 대륙의 정세를 살피면서 이미 강대국으로 자리잡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였다.

소현세자가 회군하는 청군을 따라 북행길에 오를 때 인조는 서울 교외까지 전송나와 볼모로 잡혀가더라도 소무(蘇武)와 같이 행동할 것을 당부하였다. 한나라 무제 때 흉노에 잡혀간 소무는 19년 동안 흉노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은 지절(志節)을 지킨 인물이었다. 삼전도의 치욕을 잊지못한 인조는 세자에게 절개를 지킬 것을 분부한 것이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수행원 300여 명과 함께 심양에 ‘심양관’을 짓고 거주하였다.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통해 조선에 대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였다. 세자는 조선 대사 이상의 외교관 역할을 한 셈이다.

◇하늘이 준 기회 놓치고=소현세자는 1644년 9월에 청군을 따라 북경에 들어가 70여 일 동안 체류하면서 서양인이 주관하고 있던 천문대를 찾아가 역법(曆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독일인 천주교 신부 아담 샬(Schall, J. A.)과 친교를 맺고 천문·수학·천주교 서적과 여지구(輿地球), 천주상(天主像)을 접하게 되었다. 아담 샬은 명나라 황제의 각별한 은총을 받으며 북경에 천주당을 짓고 소현세자의 숙소와 가까운 동안문에 살면서 소현세자와 사귀었다.

중국 천주교의 대학자이며 북경 남(南)천주당의 신부 황비묵은 ‘정교봉포(正敎奉褒)’에서 두 사람이 사귀게 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썼다.

“순치원년(順治元年, 1644)에 조선의 왕의 세자 (소현세자)는 북경에 볼모로 잡혀와 있으면서 아담 샬이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때때로 천주당에 찾아와서 천문학 등을 묻고 배워갔다. 아담 샬도 자주 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찾아와서 오랫동안 이야기 하였는데 두사람 사이에는 깊이 뜻을 같이하는 바가 있었다. 아담 샬은 연달아 천주교가 바른 길임을 이야기하고, 세자도 자못 듣기를 좋아하여 자세히 묻곤 하였다.

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자 아담 샬은 선물로서 그가 지은 천문ㆍ산학(算學)ㆍ성교정도(聖敎正道) 등의 여러 가지 책과 여지구 한 벌 및 천주상 한 장을 보냈다. 세자는 삼가 이것을 받고 손수 글월을 써 보내어 감사하고 칭찬하는 뜻을 표하였다.”

아담 샬은 명말의 ‘승정역서’편찬의 중심 인물이고 서양역법에 의해 추산한 신력(新曆)편수에 종사하고 있었다. 아담 샬과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만나게 된 것은 조선의 역사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양의 역법과 과학지식 특히 천주교의 교리와 천주상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현세자가 아담 샬과의 만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야마구치 마사유키, ‘조선서교사’(朝鮮西敎史)〉

◇소현세자가 아담 샬에게 보낸 편지=“어제 당신이 보내주신 천주상ㆍ천구의(天球儀)ㆍ천문서 및 그 밖의 여러 양학서(洋學書)등은 반갑게 받았으며 이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먼저 그중 두서너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정신을 수양하고 인격을 가다듬는데 관한 참으로 높고 먼 교리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어둡고 깨지 못하여 이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이 교리는 우리들의 지식의 빛이 될 것입니다. 천주상은 벽에 매달아 놓았으니 보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줄뿐더러 이 세상의 더러운 티끌을 씻어내리는 것 같아서 여러가지로 느껴지는 바 많습니다.

천주의와 여러가지 책들은 이제까지 이 세상에 이러한 것들이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이런 것을 받으니 꿈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수백년동안 하늘의 움직임과 맞지 않아서 헛된 것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이제 참으로 보기 드문 물건을 얻었으니, 무엇이 이보다 더 반가우리요.

내가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궁중에서 쓰게 하고 책을 많이 박아서 글 보는 사람들에게 펴려고 합니다. 그리하면 사막과 같이 메마른 우리나라가 학문의 전당으로 화할 것입니다. 사랑과 은총을 받은 우리 국민은 서양사람의 과학에서 배운 것을 모두 감사할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다같이 외국인으로서, 큰 바다를 건너 낯선 땅에 와서, 서로 만나 즐거이 사귐이 핏줄기를 같이 한 가족들과 같으니, 천리(天理)의 깊고 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컨대 사람의 마음이란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지식을 사랑함으로써 서로 알아내고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서양의 서적과 천주상을 우리나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천주교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릇된 나쁜 종교라고 천주의 높고 귀함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는 바 입니다.

그러므로 천주상을 당신에게 돌려보내고 실수함이 없게 하고자 합니다. 나도 당신에 대한 감사의 뜻은 나타내는 갚음으로 우리나라의 귀한 물건을 보냅니다. 그러나 당신이 베푼 은혜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못되옵니다. 삼가 말씀드립니다.”

소현세자가 서양의 진귀한 서적과 천주교 교리책을 받고 아담 샬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 때가 1644년이었다. 1644년의 시점을 기억해두자.

                                                                                                                       출처: 종교신문

           하늘 영광 내 맘에 넘치네 / 이솔리스티 로마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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