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눈치 보는 일이 많은지..
나날이 나답지 못해지는 나를 돌아보며
답답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간간이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일찌감치 우산을 내리고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곳곳에 떨어져 있는 혹은 떨어지고 있는 은행잎들이 어두운 거리를 밝혀주고 있는 것에 무심한 눈길을 주며 한숨 속에 집으로 걸어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본당 교사 4년, 그 시간이 길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힘들다는 생각도 대부분은 엄살이었지,
진심은 아니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껍질만 남은 나를 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되짚고 싶었습니다.
오해와 원망. 뒤죽박죽이 되어 여기 저기 눈치를 보느라 혼자서 속태우고 있는 내 모습에 화도 났지만,
이제는 분노하는 방법도 잊은 데다가,
그럴만한 기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무너지고 싶은 저녁이었습니다.
내가 없어져가고 있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독하게 외롭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외롭다면 차라리 나를 만날 수도 있으련만, 내 안의 내가 없어져버렸으니 이젠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그대로 무너지고만 싶었습니다.
바로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 옆에 우산을 세우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저녁, 반 접힌 우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것은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따라온 것인지 말없이 나의 동행이 되어 준 노란 은행잎 한 장.
나를 한동안 마당에 서 있게 한 노란 은행잎 한 장.
혹시 내가 보지 못하고 들어갔더라면, 밤새라도 내 방 창문 앞에서 나를 지켜주었을 노란 은행잎 한 장.
그 날 저녁 내가 눈물 속에 만난 것은 노란 은행잎 모습을 한 하느님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없어져 가는 것은 내 안에 하느님이 채워지기 위한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 봅니다. 내가 없어지는 만큼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한 번의 깨달음이 모든 것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불안함이 가셔질 수는 없겠지만, 가끔이라도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만 느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아주 조용한 꿈을 꿀 수 있는 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