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그간 좋아했던 작가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Y모 선생님. 모짜르트나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고전적 이미지의 할아버지 작가세요. 그리고 그런 고전적인 말투로도 유명하시죠. 제가 좋아했던 분인데, 이번에 그 분과 함께 하는 일이 생겼어요. 다음 주말에 찾아오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휴가라고 곤란해했더니, 오늘, 번개를 제안하시더군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신촌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신촌... 누가 보면 제가 가짜 이대생이었는 줄 알 만큼, 아는 술집이라고는 거의 없는데, 왠 낯선 순대국 집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나와야 하는 책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했지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물으셨습니다.
"젊은 처자 얼굴에 왠 그늘이야?"
(피식, 웃음)
"허긴, 주말에 이 늙은이나 만나고 있는 걸 보면 그늘질 만하지."
(피식, 여전히 웃음)
"자네가 스물 다섯이던가..연애 문제겠군."
"선생님도, 참."
"어허, 정말인가? 이거, 내가 돗자리 깔아야겠군.뭐가 문젠가?"
"모르겠어요. 다 명확하지 않아요."
"인생에 명확한 일은 별로 없네. 다 밝히려 하면 안되는 법이네.그렇게 쉬우면 그게 어디 인생인가?"
"...저에게는 명확한 것 같은데요....."
"선택의 문제이네. 잘못 선택할 수도 있어."
"선문답 같아요, 선생님."
"때로는 아주 명확한 일에도 잘못한 선택을 할 수가 있어. 그리고 자기가 그런 것처럼 누군가도 잘못 선택할 수가 있지."
"그렇게 되면 잘 선택한 사람도 손해를 보잖아요."
"인생이 그렇다네."
"오블라디 오블라카. 비틀즈 노래가 생각나네요."
"어이구, 소영 씨, 어린애 아니구먼."
"선생님도...그렇게 점쟁이 연습하시면 원고는 언제 쓰시려고 그러세요?"
"나이 들면 누구나 알게 되는 일이 있는 법이지."
"술국 식기 전에 마저 드세요."
"허허..이 친구... 자네, 샤로얀 아나?"
"윌리엄 샤로얀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년배달부’를 쓴. 읽었어요. 너무 어렸을 때라 생각은 안 나지만."
"집에 가면 찾아보게. 도움이 되는 말이 있을 테니. 자 받게."
’구월산’이라고, 아시는 분 계신가요? 술국이 맛있더군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들렀습니다. 대학 시절 저의 아지트였던 "The Velvet under Ground"에서 성심여고에서 우리의 성지였던 느티나무 그늘을 없애기로 했다는 소식에 분개하다가 이제 집에 들어왔습니다.
방금, 책을 꺼냈습니다. 다시 읽어보기에는 너무 두껍지만 뒷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군요. 이 밤. 행여 잠을 못 이루실 분들을 생각하며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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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게 마련이다. 이걸 안다고 절망해서는 안된다. 착한 사람은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다. 바보는 자기가 당하는 고통만 안다. 나쁜 사람은 세상의 고통을 더욱 심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가 가는 곳마다 고통의 씨앗을 뿌린단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 속, 숱한 사람들로부터 태어나 이 세상에 온 것이란다. 우린 그들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세상의 슬픔을 깨닫게 되면서 넌 너의 길을 이제 가는 것이다. 굉장한 실수도 해야 하고 하게 된단다. 네가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이 될지라도 두려워 마라.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도 말거라. 착하고 옳은 네 마음을 믿고 쉬지 말고 앞으로 나가거라. 너는 수없이 울고, 수없이 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웃으면서 울게 될 것이다.
...윌리엄 샤로얀, "소년 배달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