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을 때는

2000. 8. 26. 오전 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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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정신이 아득하고 아련해 지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언덕’을 바라보는 순간이지요.

 

왜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언덕을 바라볼 때면 세상이 그대로 서 있는 것 같고, 마치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맥이 풀리지요.

 

어느 거대한 동산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언덕 말입니다.

그 끝이 지평선이 되는, 하늘과 닿아있는 언덕.

 

출근하는 길, 전철역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걷다보면, 제 왼편으로 그렇게 작은 언덕이 하나 있습니다. 습관처럼 잠깐 멈추어 서서 그 언덕을 바라보다가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왜, 환상을 본다고 하잖아요.

이를테면,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죽을 때는 언덕이 보이지 않을까.

 

숨가쁘게 헉헉거리며 올라야 하는 언덕이 아니라, 산책하듯 찬찬히 오를 수 있는 언덕.

홀가분하게 오르기 위해 짐을 버려야 하는 언덕.

미움, 원망, 욕심, 어쩌면 자기마저도 버리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건데.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이렇게 살다 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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