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변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이를테면,
최인훈이 <<광장>>을 여러 번 수정해서, 판본마다 시작 부분이 다르다는 것,
같은 생맥주이지만 집집마다 공법이 다르니 다른 맛을 낸다는 것,
램브란트가 그린 자화상은 100여 점에 이르지만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똑같은 외국 책이지만 번역한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한국판이 나온다는 것.
또 있죠. 같은 사람이 부른 같은 노래인데 어느 앨범에 수록 되어 있는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뽐낼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뽐내는 마음"을 참지 못해 방정맞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면 꼭 한 마디씩 덧붙였죠.
"아, 나는 그 중에 **가 제일 좋더라구."
오늘 아침 저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origin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오리진이 좋은지 라이브 CD 버전이 좋은지 라이브 테잎 버전이 좋은지 견주어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아, 이 속된 교양머리여, 하며 머리를 벽에 찧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조차 누군가에게 "내가 이만큼 알고 있다"고 내세워야 직성이 풀려했던 이 낯부끄러운 교양머리.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이 버전 저 버전 전전하며 어떤 것이 좋은가 견주느라고 저는 진짜 음악을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속된 계산이 없었다면 훨씬 편안하게, 편견없이 무엇이든 대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가슴이 막 뛰더니 아찔한 현기증이 났습니다.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하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아득해 지면서요...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었어요.
"아, 다 맛이 다르구나"
그거면 충분한 거였어요.
이제와 깨달았다 하자니 왜 내게 맞는 쥐구멍은 없나 싶지만,
이렇게 해서 내가 나에게도 좀 너그러워지면,
이렇게 해서 어른에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당신도 이렇게 해서 어른이 되어가셨나요?
낮은 하늘 아래서 유난히 그리운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