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 아저씨와 영어

2002. 12. 21. 오전 11:44:06

글자

학년 말에는 부모님들이 책거리 겸 해서 선생님들께 떡을 보내주시곤 한다. 방금 짙은 곤색 잠바를 입으신 아저씨가 떡을 배달하고 가셨다. 작은 종이에 ’동성중학교 교무실 1학년 반장’이라고 급한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을 보여주며, ’에--에-’라고 소리를 내셨다. 주문을 받을 때 급하게 적은 글씨인 듯 볼펜글씨가 메모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종이는 주머니속에서 약간 꼬깃꼬깃해졌다.

 

우리 학교에 교무실이 학년별로 나누어져 있고, 고등학교 교무실도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아저씨에게 다시 확인하려고 물었지만, 아저씨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에--에--’웃으시기만 하는 아저씨는 내가 못알아 듣자, 매직으로 방금 내려 놓은 떡 상자 세 개 가운데 맨 위에 것에, 또박또박 ’동성중학교 교무실 1학년 반장’이라고 적어 주었다. 그는 웃으면서 바쁜듯이 떠났다. 끝이 불분명했지만 ’안녕히 계세요’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씀을 못하시는 분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것을 미소로 의사소통하고 있는 듯 했다.

 

아저씨가 가신 후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서, 다시 영어 성적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아이들이 좀 있지만, 대부분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이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내 성격상 매몰차게 공부시키지는 못했다. 듣기 평가 성적도 안좋고, 번역 수행평가도 거의 베끼기만 했고, 문법시험 결과도 좋지 않다. 학기 중에 쓰기도 시켜보았지만, 고쳐주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어와 관련된 수많은 광적인 미신과 구조적인 악의 담론을 이기고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영어라는 말을 잘 알아듣고, 잘 읽고, 잘 쓰고, 잘 얘기하면 좋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오늘 교무실로 떡을 배달하러 오신 아저씨처럼 혀를 움직여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말없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과 정신이 억눌린 사람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사랑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소리를 높일 수 없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신해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람들과 마음과 사랑으로 얘기할 수 있기를 더욱 바란다.자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샘처럼 솟아나는 기쁨을 사랑의 실천으로 전할 수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떡을 먹고, 점심을 먹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밥과 김치를 꼭 먹어야 한끼를 먹는 것 같은데, 일단 떡부터 먹고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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