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002. 11. 23. 오후 1:55:08

글자

15지구 교사의 밤이 끝나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술집에 갔다. 술집을 가득 채운 선생님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의미없는 소음이 되고, 뿌연 안개가 되어 눈앞을 흐리게 했다. 사람이 많은 자리일 수록 모두는 익명의 낯선 사람이 되고, 그만큼 외로워지고 어찌할 줄 모르게 마련이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나는 몇몇 후배 교사들의 재촉에 혹해서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빠, 먼저 가게요?" 지영이가 문밖으로 나와서 더 머물 것을 권했지만,

"음, 안그러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서운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길을 나섰다. 공기가 차서 목도리 안으로 턱을 깊이 넣어야 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화곡동에 30년을 살았는데, 어디인지 알 수가 없네?'

내가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의 작은 골목이 다 그렇듯이 술집 간판만 눈에 띄고, 낯선 버스 번호들만 보였다. '이런 여긴 사람들마저 낯설군.' 걸어오면서 만나는 길거리의 정경은 화곡동에서 어떤 막다른 길의 벽을 열고서 들어 오면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같았다.

 

'아 춥다.' 감기기운 때문에 온 몸이 더 싸늘해졌다.

 

새로 이사 온 곳도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초등학교 옆인데, 이 캄캄한 밤에 머리 속까지 캄캄해 진 것인지, 이상하게도 그 초등학교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생긴 초등학교가 워낙 많으니까. 택시를 타고 어느 초등학교 옆으로 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걷기는 걷고 있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냥 길을 잃은 셈이 되었다. 길을 걷다가 뒤늦게 집으로 나선 문영이 일행을 만났다.

 

"오빠, 아직도 집에 안갔어요?"

"응, 새로 이사온 집을 못찾겠어. 어느 초등학교 근처인데."

"오빠, 잘 찾아봐야죠."

 

문영이는 내게 새로 이사온 곳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고 짐작가는데로 가르쳐 주려고 애를 썼다. 위 아래로 검게 입고 머리를 올린 문영이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문영이의 도와주려는 의지도, 나의 마비된 두뇌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 흐릿했다. 빨리 집에 가서 따뜻한 방에 몸을 누이고 싶은데. 도대체 여긴 어디이고 집은 어디인지.

 

결국 동생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막내가 새로 핸드폰을 해서 다행이다. 011-267아니 276 이런 동생 전화번호마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다가, 나는 바보처럼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전화마저도 내 기억력처럼 고장난 것일까? 갑자기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아 빨리 집에 가야하는데, 쉴 수 있고, 몸을 덮히고, 그 동안 교사의 밤 준비하느라고 빗속에서 사진찍고, 쉬는 시간에 충무로를 다녀오고, 음악을 고르고 그렇게 나를  긴장시켰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집으로 가야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너무 경직되어 있고 절망해 있어서 알 수 없는 칠흙의 거리에 그냥 서성댄다.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고, 손가락을 눌러서 전화를 할 수도 없다.

 

"재선아!" 누군가 부르는 소리다.

"재선아!, 밥먹어야지. 또 늦겠다."

 

눈을 떠보니 우리 집이다. 소피아 호텔 맞은 편, 창동 주공 아파트 1단지. 내가 늘 지내는 거실이다. 집이다. 겨울 이불 속은 따뜻해서, 일어나기 싫다. 꿈속에서 그렇게 걸어다니고 헤메고 전화를 하려고 애를 써서 가지 못한 곳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바로 그렇게 내가 평화롭게 쉬기를 갈망했던 우리 집이다.

 

'휴우. 다행이다. 어찌되었든 집에 와 있으니.'

 

우리들은 모두 우리가 참으로 사랑받을 수 있고, 우리의 삶을 투명한 유리잔에 담은 포도주처럼 모든 이들에게 들어올려 보여주고, 서로를 축복해 주고, 슬픔을 공유해 주고, 무엇보다 편히 긴장된 마음을 내려 놓고 쉴 수 있는 곳을 갈망한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없고, 실력이 있다고 허풍을 떨 필요도 없으며, 나의 삶 전체를 보듬어 안아줄 그런 고향을 찾는다. 나의 존재 전체를 받아 줄 집안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그곳에서 내 삶이 의미로울 수 있길 바라고, 헌신하길 바라며, 삶의 참된 기쁨들을 그리워한다.

 

나도 그런 것을 찾아 헤매인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너무 실망스럽기만하다. 그것들 때문에 내 영혼은 자주 좌절감과 자괴감으로 생기를 잃는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능력있는 영어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영어 수업을 듣지 않고, 아이들과 서로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고, 기회가 닿으면 좋은 연구자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는 어렵게만 여겨지고, 글 한줄 쓰기가 어렵다. 거기다가 힘차게 계획했던 유학은 이제 쓸쓸한 토플성적표와 책장에 먼지만 쌓인 GRE책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원했지만 이제까지 나는 나에게는 터무니 없이 근사한 아가씨들만 쫓아다녔고, 역시 그들은 내겐 그닥 관심없었다. 13년차 답게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초등부, 중고등부, 햇살, 다시 초등부,15지구 서기, 월례교육 강사 그리고 창4동 초등부 이렇게 여기저기 자리만 옮겨다니다가 어느 곳에도 전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닌 셈만되었다.

 

능력있는 영어교사, 연구자, 근사한 연애, 인품있는 선배교사가 되길 원하는 것, 그것은 어쩜 실제로는 이사오지도 않은 화곡동의 집을 찾아서 그 알 수 없는 꿈속의 거리를 해맨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집은 있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찾아갈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관념에만 존재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고집스런 자아가 우기는 허상으로 가는 어두운 꿈속의 길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오는 길은 간단했다. 관념의 암흑 속에서 걸어 해매지 않고, 그저 눈을 뜨는 것이다.

 

 눈을 뜨니, 나 어려서 부터 늘 아침을 차려주시던 어머니가 보였다. 작지만, 우리 집이 있다. 눈을 뜨니, 시끄럽고 바닥에 모래가 가득하고 심지어 예쁘라고 수요일 날 내가 꽃아둔 장미에도 노란 분필가루가 낀 교실이 보인다. 눈을 뜨니, 어제 싸움을 해서 나한테 혼난 상택이가 있고, 학생부장 선생님한테 걸려서 벌을 받으면서 나한테는 누가 오래 엎드려 있나 내기한다고 거짓말 한 광모가 있다. 눈을 떠보니, 창 4동 성탄예술제 때 써야하는 대림, 성탄 교재연수 자료가 있다.

 

 헨리 나우엔이 이야기했듯이 눈을 떠서 내 자리를 응시하는 것은, '내 삶의 잔을 마시는 것"이다. 이것은 '상념의 잔'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입술을 적시고 포도주가 주는 쓰고 달콤한 삶의 기쁨과 희망, 슬픔을 온전히 다 담고 있는 '참삶의 잔'이다. 핵심은 '나에게 주어진 이 잔을 마실 수 있는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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