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 때였다. 수많은 깉은 과 여학생들과 홀로 A+를 받은 '여성의 심리적 특성'이라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프로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는 'Liebe und Arbeit.'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사랑과 일' 그땐 '그럴 수도 있겠는걸'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과연 그렇군.'이라고 감탄하곤 한다.
광화문에 있는 흥국생명 건물로 병재형을 찾아간 건 월요일이었다. 병재형을 처음 본 건 신입교사시절 화곡본동 시장의 왕만두로 여느 때처럼 회합 끝나고 라면을 우루루 먹으러 갔을 때,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다 튼 육군 상병이 요안나 누나와 함께 나타났을 때였다.
몇 마디만 그 형의 얘기를 듣고도 무척 인간적이고 진지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교사실 낙서장에 써둔 형의 글들 언제나 심장을 사로잡는 얘기들이었다. 86학번 형들은 모두들 남다르게 비상했다. 의사가 된 희조형, 신학교 6학년 때 본당 선배 누나랑 결혼해서 벨기에로 유학갔다가 지금은 국어 교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승관이 형, 엔지니어가 된 밍고형과 안드레아 형,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그만두고 지금은 SK에 다니는 병재형.
병재형과는 여행도 제법 다녔다. 강원도 탄광촌으로 두번 드라이브를 갔다. 아무 것도 없는 탄광촌, 버려진 아파트, 거친 목침응로 못박혀서 문을 닫은 탄광, 번화했었지만 사람이 빠져나가 더 초라해진 시장, 낮에도 술이 취해 도로를 지그재그로 걷는 희망없는 광부들. 노랗게 물든 바위와 검은 물줄기들. 해가 빨리 지는 강원도 고한의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산안개를 보고, 창조된 것들의 놀라움과 닥쳐오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 나누었던 얘기들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병재형은 그럴 줄 알았다. 정말 책임감있고 자상한 가장이 되었다. 그는 그럴 사람이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 가난을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려고 애를 썼다. 그에겐 빵을 벌거나 여러 사람을 소개받는 일이 초라한 일이 아니고 신성하고 진지한 과정이있다. '결혼은 무덤이야.'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어. 이 벌이로는...' '바보가 되는 기분이야 집에만 있으니까'라는 비관적인 얘기나 '머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나한테 잘해 주는 지 몰라.' '애기가 머 이런걸 하고 저런 걸하고.'하는 행복에 겨운 장미빛 얘기같이 결혼을 주제로 늘상 사람들이 얘기하는 식으로 형은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형은 언제나 나를 보면 첫마디가 '좋은 소식없어. 나는 네게 정말 좋은 사람이 생겨서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하고는 '나'에서 '우리'로 가치를 옮겨 가게 된단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만큼이나 넓은 다른 세상이 열리지.' '힘들지, 그렇지만... 의미있어.'라고 얘기해준다. 오랫동안 사제행만을 생각했던 나도 병재형을 보면 결혼생활에 대한 자긍심을 얻게 된다.
무작정 찾아든 나에게 형은 '밥먹었니?' 물어왔다. '아니요, 근데 괜찮아요.' '난 먹었는데, 우리 샌드위치라도 먹자.' 형이 국제 금융팀에서 일하기 때문에 매일 밤 11시까지는 늘 아주 바쁘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형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형의 얼굴만 보고 인사만 해도 힘이 솟을 것 같아서 찾아 온건데...
(다음 시간에 다시 쓸께요. 갑자기 집에 가야해서요. 죄송합니다. 애독자(?) 여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