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성가의 한 부분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조용히 반성하고" 가끔씩 섬뜩한 건 어린이들을 위한 성가의 단순 소박함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거나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게 할 때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게으름을 피워서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양희영 교감 선생님의 추모미사에 가지 못했다. 처음 학교에 와서 양교감 선생님과 자주 말다툼을 한 기억 밖에는 없다. 시내에서 영화를 보고, 시끄럽게 저녁을 먹고, 만나야할 사람, 해야할 일이 많고, 아직은 ’죽음’같은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에게는 생을 외롭게 마감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건 미루고 또 미루는 여러가지 것 중에 하나일 뿐이다. 마닐라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지낼 때, 자주 양선생님을 기도나 미사 때마다 기억했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했지만, 가족이나 주치의가 아닌 나같은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죽음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슬픈 소식’에 지나지 않았다. 양선생님을 찾아간건 이미 돌아가시고 난 뒤였다. 학교에 늘 지각하는 것처럼 왜 난 이런 일에도 늘 늦기만 했을까?
영어 수업을 네 시간을 했다. 이상하게 여기 중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도통 기억나는게 없다. 늘 교과서를 반복해서일까? 아참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반 수업할 때 ’Othello’이야기를 해주었다.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은 간만에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Othello가 Desdemona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Desdemona를 죽일 것을 결심한 건 아닐까?’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자기 삶 안에서 유사한 자기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작품은 원래 작품과 권위있는 평론가의 해석을 암기하기 위해서 읽는다기 보다는 자기의 삶과 작품의 삶이 만나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 읽는 셈이다. ’계층과 문화적 차이, 인종을 넘 나드는 사랑과 결혼이 현실적인 한계를 만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들도 할 수 있다. 환경기록부를 보면,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평화시장, 재단사와 미싱사, 의사와 한의사, 은행원과 은행원, 모두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삶의 어두운 현실은 아이들에게 미리 알려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것들을 꼭 비관적인 언어로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 아이들은 아직은 ’Othello’ 이야기와 부모님들의 사랑, 그리고 자기들의 짝사랑을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권리가 있다. 남학생들에게 축구와 컴퓨터 게임 그리고 먹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건 좀 어려운 일이다.
오후에는 기차를 타고 대학원 수업을 다녀왔다. 참 같이 수업을 듣는 분 중에 전직 간호사 한 분이 계시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1년정도 일하시기도 했다고 했다. 아무튼 Postmodernism in Engnlish Teaching을 듣는 사람중에 가장 영어실력이 뛰어난 분이시다. 오늘은 잠깐 캄보디아에서 지내던 얘기를 하셨다. 부군되시는 분이 치과 의사이신데, 캄보디아에서 NGO일로 한동안 계셨던 것 같다. 아무튼 전문직에 있으면 꼭 돈을 버는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이 조금 넓어지는 것 같다. 나도 그동안 만났던 캄보디아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모두 수줍음이 많고, 참 착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대학원 수업은 부담이 늘 되지만, 재미있다.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고.
늦은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1시가 훨씬 넘었다. 지방대 통학생들이 얼마나 힘겹게 통학을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중심과 주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 모교인 고대 도서관에 공부하러 나갈 때 느끼는 분위기와 지방대 중에서도 그렇고 그런 대학인 우송대 학생들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사뭇다르다. 선능역 근처로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 느끼는 느낌도 다르다. 그리고 파리나 로마와 서울, 마닐라에서의 느낌이 모두 다르다. 주변과 중심은 사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데..... 예수도 로마시대애 아주 주변에서 살다가 사형당한 시골청년에 불과하다. 김용택씨의 산문이나 시를 읽으면 주변과 중심의 경계가 무너진다. 섬진강변에 사는 마을 사람들, 학교 아이들이 중심이 되고, 서울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가운데 오직 성취와 소비가 존재양식이되는 곳은 주변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 마음이 스산해서 남산밑에 해방촌을 거닐었다. 땀흘려 열심히 사는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좁은 골목, 그 작은 집, 오래된 가게들을 사진이나 그림, 글로 남기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게 하고 싶다. 우리가 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소위 강남이며, 용인이며, 성북동이며, 일산이며, 분당이며 소위 ’중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을까봐 걱정이 된다. 이름 없이 삶의 부조리함을 견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싶다. 허영심이거나 욕심일까?
나는 말이 많은게 문제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늘 수다스러워진다. 잠깐 메일을 확인한다고 하다가 또 이렇게 늦어졌다. 내일도 지각할 듯, 수업을 4시간 해야하고 출장도 가야하는데... 아무튼 출장이 있으면 좋다. 학교글 일찍 빠져 나올 때는 군대 있을 때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
정말 자야겠다. 먼저 이를 닦고...
Sweet dream, my frien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