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서연이

2002. 5. 23. 오후 5:24:52

글자

  지난 주 토요일은 정말 혼비백산이었다. 학교에서 두 시간 수업을 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서는 성가대 특송 연습을 시키고, 성모의 밤 행사를 하고, 미사 때 특송을 하고, 그리고 또 교리를 하고, 다음에 이어서 성가대 회식을 하러 갔다. 4동 교사는 모두 11명이지만 어느 본당이나 그렇듯이 늘 두세명은 빠지고 없으므로, 무엇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

  우리 학교 음악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성가대 아이들을 엄하게 대하면, 곡의 완성도는 높아지겠지만 아이들하고 알콩달콩 지내자고 교사생활하는데,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 을러대서 어쩌자는건가하는 미심쩍은 후회가 생길 것이고, 아이들과 친근하게 지내다 보면 아주 들어주기 힘든 노래들이 아이들 입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더니.

  

물론 나는 25명 성가대 여자 아이들에게 완전히 잡혀 산다.

 

  '자 이제 발성연습 좀 하자.'

  ', 이런 거 해서 뭐해요. 안해도 노래 다 잘해요. 오늘 특송도 안할거면서.'

  

  '다음 주에는 이 노래 엘토 파트 연습해서 한 번 화음으로 불러보자.'

  '선생님, 저희를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저희가 그런 거 할 것 같아요. 우리 엘토 연습해도 다까먹고 그냥 소프라노 따라 엉겨붙어요. 그냥 쉽게 갑시다.'

 

  '빨리 새 성가대 선생님이 와야하는데, 선생님은 음악전공이 아니라서.'

  '아휴, 왜 우리 성당 선생님들은 성가대만 맡았다 하면 널부러 떨어지는거야. 그냥 선생님이 계속 해요. 뭐 우리가 주물르기도 편하고.'

 

간헐적으로 광포한 욕설과 체벌을 서슴지 않는 나의 모습만 보고 두려움에 떨며 살 고 있는 동성중학교 2학년 7반 학생들이 내가 이 25명의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이리 저리 굴림 당하고 산다는 것을 안다면...... 성당에서는 포악한 본래의 성격을 드러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인 이 상황을 나 대신 헤치고 나가는 이는 바로 성가대장, 거창하게 얘기하면 우리 어린이 성가대, 상임지휘자인 서연이다. '모두들 당장 성가대복으로 갈아입고, 악보 준비해서 성가대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어.' '노래하기 싫으면 학년 자리로 내려가서 다시는 올라오지마.' '선생님이 아이들을 확 휘어잡으셔야죠. 지금 뭐하시는거예요.'  

 

  성가대 회식을 위해 갔던 식당에서 역시 성가대 아이들은 초지일관으로 떠들어 대고, 뛰어다니고, 쿠션으로 베게싸움하고, 레스토랑에서 팝콘 달라고 하고..... 아무튼 나는 이미 정신이 혼미하여 그냥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직 제대를 기다리는 병장의 마음처럼 빨리 회식이 끝나고 교사회합실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순간 서연이가 홀연히 일어나서 테이블 네 자리를 모두 평정하고, 6학년들끼리 모여앉은 자리로 돌아갔다. 6학년 여자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이란 예전에 군에서 이등병일 때 계급이 훨씬 높은 소령이나 중령, 여군이 모여있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경외심, 존경심.

  

  성가대 회식이 다 끝나고 어머니 선생님 두 분과 청년 여교사 두 사람이 회합이 벌써 끝났다며 식당 앞으로 나를 데리러 나왔다. 아이들을 보내고 아연실색해 있는 나를 본  교감선생님 말씀, '아니 왜 다른 선생님이랑 같이 가지 그랬어요?' 나의 대답은,

 

  "온 이스라엘 회중을 대신해서 한 사람이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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