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5일 (녹) 연중 제27주일
독서 이사 5,1-7
필리 4,6-9
복음 마태 21,33-43
포도밭은 이스라엘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재산이며 부귀의 상징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시비가 많았다.
게으른 소작인들이 엉망으로 만들거나 소출을 빼돌리기가 예사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포도밭에 비유하신다(제1독서).
사도 바오로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 걱정을 피하고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것을 권한다.
매사에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드리면 진정 감사할 일이 자꾸만 생겨난다
(제2독서).
소작인들은 정상이 아니다.
소작료를 내기는커녕 포도밭을 가로채려 한다.
돈을 받으러 온 하인들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유다인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를 알려 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말씀은 어이없는 내용입니다.
어떤 지주가 포도밭을 일구고 포도주 공장까지 차린 뒤 세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용료를 내지 않습니다.
돈을 받으려 하인들을 보냈더니 오히려 그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가로채려
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행동 역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자를 죽이고 예수님마저 없애려 한다는 지적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은혜를 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예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사건과 만남'이라는 예언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건을 통해 그분께서 말씀을 남기셨습니까?
고통스러운 사건일수록 그분의 말씀은 강렬했습니다.
만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연인 것 같아도 '분명한 뜻'이 담겨 있는 만남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지나고 나면 잊어버립니다.
그때의 느낌과 깨달음을 묻어 버리고 맙니다.
복음 말씀은 이런 삶을 돌아보라는 질책입니다.
포도밭은 미래를 상징합니다.
생명과 함께 맡겨 주신 우리의 한평생을 뜻합니다.
그러니 인생의 소작료는 내야 합니다.
시간을 바치고 소유를 바치고 정열을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과 봉사 생활'은 다만 그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봉사는 의무입니다.
할수록 은총을 만나게 되는 의무입니다. -매일미사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선민으로 삼으시고 지도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여러 차례 예언자들을 파견하셨지만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을 배척하고
박해했습니다.
아들 예수님마저 아예 죽여버렸습니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예수님의 미래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정작 당사자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 비유가 자신들을 겨냥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악의를 품었습니다.
그나마 군중이 두려워 머뭇거렸습니다.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불의를 인정한 셈입니다.
의인들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는(13,13) 이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점점 더 하느님과 단절되어 갑니다.
종말에 하느님은 행하는 분이시고 모든 것의 최종 결정자이십니다.
하느님이 맡기신 일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착각해서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분 말씀을 왜곡해서도 안 됩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두 아들은 아버지의 포도밭에서 일해야 했으며,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정해진 소출을 바치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행동과 참된 정의를 행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복음묵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