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0일(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에 동참합시다.
입당송 | 요한 12,1.12-13; 시편 24(23),9-10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높은 데서 호산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제1독서 | 이사 50,4-7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화 답 송 | 시편 22(21),8-9.17-18ㄱ.19-20.23-24(◎ 2ㄱ)
◎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 보는 사람마다 저를 비웃어 대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내 젓나이다.
"주님께 의탁했으니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구해 내시겠지." ◎
○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둘러싸, 제 손발을 묶었나이다.
제 뼈는 마디마디 셀 수 있게 되었나이다. ◎
○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제 속옷 놓고는 제비를 뽑나이다.
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신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
○ 저는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
제2독서 | 필리 2,6-1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복음환호송 | 필리 2,8-9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하느님은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네. ◎
복 음 | 루카 22,14-23,56<또는 23,1-49>
○ 루카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영성체송 | 마태 26,42 참조
아버지, 이 잔을 비켜 갈 수 없어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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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기:수난의 길을 가시는 주님께 무엇을 깔아드려야 할까요?
성주간을 시작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대비되는 두 그룹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칭하며 환호하는 제자들의 무리와, 예수님을 '선동자'라고
폄하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예루살렘 근교 벳파게와 베타니아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오리게네스는 베타니아가 '순종의 집'을 뜻하고, 벳파게는 '턱의 집',
곧 사제들의 장소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물의 턱은 사제들의 차지였기 때문입니다(신명 18,3 참조).
이런 해석으로 보니 베타니아와 벳파게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대사제'가 되신 예수님께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축복할 때, 유다에게는 이렇게 말 했었지요.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으로 제 겉옷을 빤다"(창세 49,11).
이 축복이 후손인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집니다.
이전까지 나귀를 타지 않으셨던 예수님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어린 나귀"에 오르셔서 십자가에서 "포도의 붉은 즙" 같은 피를 흘리실 수난의 장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때, 제자들의 무리는 자신들이 봤던 모든 기적을 떠올리며 큰 소리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환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고통의 쓴잔을 드신 것처럼, 제자들은
겉옷을 깔아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성무일도 독서기도에서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주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자, 와서 당신 수난으로 바싹 다가서시는 그분께 달려가 그때 그분을 맞이한
사람들을 본받읍시다.
그러나 길에다 올리브 가지나 옷자락이나 팔마 가지를 깔지 말고, 우리 자신은
최대한의 겸손된 마음과 올바른 정신으로 그분 앞에 엎디어 다가오시는 말씀을
받아들 입시다.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 안에 맞아들입시다.
겸손 자체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겸손하게 나타나시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상상하다 보니 갑자기 김소월님의 유명한 시
"진달래꽃"이 떠오릅니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예수님 수난의 길에 우리의 기도와 겸손이 꽃으로 뿌려져, 그분의 발에 닿는
영광이 되길 희망해봅니다.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