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요한 6,68)
예전에 일본에서 선교 사목을 하시는 신부님의 본당 신자분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신자 비율은 극히 적어 가톨릭은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제가 한 신자분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 이세요?" 이 물음에 자매님은
"하느님은 목발과도 같은 분 이십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준비하던 중 발목에 문제가 생겼는데, 목발의 도움으로
포기하지 않고 순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느님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복음 선포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매우 초라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들을 추방하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먹이시자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까지 하는 인기 절정의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체성사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시고 결단을 요구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주위에는 겨우 베드로를 위시한 열두 제자만 남았다는 내용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을까요?
복음은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사실, 동물의 피까지도 엄격히 금하는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하며 떠나갑니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각,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결코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주시는 상황과 뜻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길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끝부분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이를 통해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베드로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베드로는 그동안 주님과 함께 머문 세월과 체험을 통해 믿고 있었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 길은 분명 그분께서 함께하시며, 도움을 주시고 살리시는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의 눈과 세속적인 가치로 볼때는 불합리해 보이고 손해 보는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참된 기쁨과 행복, 생명을 가져다줄 것임을 믿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후일에 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영광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여호 24,15)
이광휘 베드로 신부 | 사회사목국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jpg)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요한 6,68)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가족 혹은 이웃, 경제 사정 등 나를 힘겹게 하는 요인들이 많습니다.
혼자 겪어 내기가 어렵습니다.
이웃의 손길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달려갈 곳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사진 설명:갑곶성지, 강화:홍덕희 아녜스 | 가톨릭사진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