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평화를 주소서!
천주교회 입교 동기에 대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거센 세파가 몰아치는 인생 여정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는 물론 가정의 평화, 나라의 평화, 온 세상의 평화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요한 14,27)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화는 재력, 권력, 군사력 등을 키워서 다른 이들을 위협,
제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평화를 이루십니다.(에페 2,14 참조)
그분이 주시는 평화는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가 어떻게 참된 평화를 이룩하였는지를
알려줍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 신자들로 시작되었지만,
왕성한 선교활동 덕분에 많은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는 교회에 큰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어려운 문제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소중히 여기면서 준수해왔던 모세 율법을 둘러싼
갈등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고, 그래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무런 차별 없이 구원의 상속자가 됩니다.(갈라 3,27-29 참조)
그런데 일부 유대인 출신 신자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 중 몇몇이 안티오키아 교회에 와서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동하여 물의를 빚습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인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대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모교회로 가서 문의를 합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논의를 하였고,
성령의 인도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립니다.
그들은 이방인 출신 신자들이 모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유대인 출신의 신자들을 배려하여 이들이 역겨워하는
몇 가지 사항,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그리고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고 지시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원칙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어 평화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이들을 ‘천상 예루살렘’(제2독서)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지닙니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이미 세상에서 천상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참된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우리가 성령께 응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헌신할 때, 그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기심과 완고함 때문에 참된 평화가 자리를 잡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주 자신을 살피면서 주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주님! 평화를, 평화를 주소서."
-서울대교구 손희송 베네딕도 보좌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