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2015. 11. 2. 오전 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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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눈을 뜨지 않으면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을 얼른 뜨지 않으면 사람을 잃습니다. 삶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나 자신도 잃어버리고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눈을 뜨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은 여전히 깊은 어둠일 뿐 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차라리 어둠 속이 낫다고 생각해서 눈을 뜨고 싶어 하지 않는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어둠이 좋아도 어둠을 딛고 일어서야 하고, 빛 속에 있기 싫어도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하고, 하느님의 역사 안에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도 잃지 않고, 내가 어디에서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 살았던 앞 못보던 이가 믿음 하나로 눈이 열렸듯이 우리를 어둠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숲 속에서 길을 헤맬 때 길을 찾고 집으로 돌아 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을 내밀어 그분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주님께 나아가는데 있어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 상처를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하여 곪은 채 지금껏 살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 상처는 분명 하느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묶어 놓거나 더디게 만드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볼 수 없음을 지팡이로 극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적인 눈멀음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자존심은 그런 지팡이마저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능력 안에서 새 삶을 살게 된 소경은 '눈뜬 소경'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바리사이적인 완고한 기질, 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 그리고 쉽게 판단하게 하는 선입관과 고정관념의 사슬을 끊어버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위를 보지 못하고, 이웃과 세상에 눈을 감고 살아갈 때 우리는 스스로 눈뜬 소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장애물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건네옵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예수님께 달려가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야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김경진 베드로 신부(의정부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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