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리나요? 그러면... 이제... 말하세요"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과학적 보고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계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너무 높은 진동이나 너무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인간의 듣기 능력 밖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묵상거리를 제공해줍니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오늘 복음의 '반'귀머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각자는 같은 소리를 다르게 듣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것들이 다르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인식의 차이!
이 '들음의 기술'은 말하는 내용을 결정합니다.
'말하는 것'은 매우 밀접하게 '듣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듣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숙고해야 할 것은, 당연히 '듣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매우 커다란 걸림돌은 이것입니다.
세상은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
이러한 인식은 사실 자기 중심적 본능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조차도 '듣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론 잘하는 신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듣는 신자'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들음의 기술'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본인, 오직 자신이 '알아차려야'할 인간 삶의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치유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집중해 보십시오. 그 치유 기적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총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듣기와 말하기!
중요한 뭔가를 알아차리셨습니까?.
뭔가 느끼셨습니까?
참 잘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잘 듣기 위한 좋은 예 중의 하나입니다.
잘 듣는 것, 그것은 우선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펴들고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도 여전히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멘.
-김종성 야고보 신부(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