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2008. 5. 30. 오전 8:51:19

글자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분이 내 안에서 탄생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탄생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오늘 교회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칭송하고 공경하는 
    신앙교의는 에크하르트가 말한 질문에 빛이 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루카 4,43)라고 한 인사말에서 유래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하느님께 드리는 칭호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마리아께서 여신(女神)이라든가, 
    신성(神性)을 지녔다던가,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에게서 유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위격 안에 하느님의 신성과 인간의 
    본성을 온전히 간직하고 계시기에 마리아가 낳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계시기에 우리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신앙고백은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과 동경인 
    ‘하느님 됨’(神化)을 채워 주고 있습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는 우리 민족설화 중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분을 뛰어 넘는 애틋한 사랑이야기이지만, 인간은 다 
    평등하며 또한 고귀한 존재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차원은 이보다 더 깊고 넓고 높습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함으로써
    (갈라 4,6 참조) 우리 안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표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데”(갈라 2,20) 있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서
    (루카 1,38 참조) 예수님을 잉태하고,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고 
    키우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고(故) 바오로 6세 교황은 철학자 ‘장 기통’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나눈 대화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를 “
    사람이 말씀이 되셨다”로 바꾼다면, “이것이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심오한 정의가 아닐까요?”하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늘 깨어 듣고 묵상하며 마음 속에 
    간직하며 살 때(루카 2,19참조), 
    주님은 늘 우리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모되어 갈 것입니다.
    
    - 구요비 욥 신부의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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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과 기도의 결론 마니피캇(Magnificat)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장 46-56절)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마니피캇(Magnificat, 성모님 찬가)입니다. 
    엘리사벳의 인사를 받은 마리아는 마니피캇으로 응답합니다. 
    
    성모님 찬가는 성서의 여러 찬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미가입니다. 
    훌륭한, 그러나 겸손한 신앙인인 마리아의 기쁨과 
    확신에 가득 찬 신앙고백이자 하느님을 향한 찬미가입니다. 
    
    마니피캇은 부족하고 비천한 자신을 기억하여 찾아주시고 
    메시아 잉태라는 감지덕지한 사명을 맡겨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찬가는 주님의 온전한 아들딸이 되기를 결심하는 수도자들, 사제들, 
    봉헌생활자들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이기에
    매일 저녁 성무일도 때 마다 사용됩니다. 
    
    매일 바치는 찬가이기에 식상할 것 같고, 
    지루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부르지만 그때 마다 성모님의 성덕이, 
    성모님의 기쁨이, 
    성모님의 고통이, 
    성모님의 향기가 손에 잡힐 듯 전해옴을 느낍니다. 
    
    어떤 수녀원에서는 종신서원 예식을 끝낸 수녀님들이 
    하느님과 회중들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헌생활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촛불을 켜들고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특별한 지향을 두고 간곡히 부탁드리는 청원기도,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터져 나오는 탄원기도, 
    9일기도, 54일 기도, 청원을 허락해주심에 기뻐하며 올리는 감사기도... 
    
    그러나 마리아처럼 찬미의 기도를 바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고통 앞에서도 결국 삶이 축복임을 깨달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현실 앞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기에 
    기도의 결론은 언제나 찬미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보다 성숙한 기도입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우리, 
    늘 불충실했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지난 삶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는 찬미의 기도입니다. 
    마리아께서 바치셨던 마니피캇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늘 희망적이어야 합니다. 
    낙관적이어야 합니다. 
    
    복음 한 구절 한 구절을 묵상해보십시오. 
    성서 전반 그 어디든 한번 살펴보십시오. 
    거기 사용된 언어, 교훈은 늘 희망적입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나날이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하루의 삶에로 초대하신 하느님께 기쁨과 감사에 찬 
    찬가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어느 순간, 
    생명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어느 순간에 
    우리 기도의 결론이 마니피캇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신부님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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