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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매단 감나무 가로수가 눈에 띄는 곳 점점 깊어가는 가을을 품으러 가는 길. 충북 영동의 드넓은 들판 곳곳에는 나락을 알알이 매단 벼가 황금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논둑 곳곳에 보랏빛으로 피어나고 있는 쑥부쟁이와 노오란 심장을 드러내며 하얗게 피어나는 구절초, 바람이 살짝 불면 금세 꺾일 것처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저만치 야트막한 가을산에서는 전봇대처럼 훌쭉 솟아난 미루나무가 촘촘촘 매달린 잎사귀에 노랑빛 물감을 칠하고 있다. 마치 미루나무의 몸이 붓이 되어, 눈부시게 찬란한 가을해를 짙푸른 하늘에 천천히 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착시일까. 갑자기 미루나무가 성큼성큼 달려와 나그네의 몸과 마음에도 가을빛을 마구 칠하기 시작한다. 따가운 가을햇살 아래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는 감나무 가로수가 유난히 눈에 띄는 충북 영동. 억센 경상도 말씨와 부드러운 충청도 말씨가 서로 어우러져 독특한 말투를 쓰고 있는 고장. 크고 작은 산들이 첩첩이 서 있는 영동의 가을풍경은 대자연이 땅에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다. 그 풍경화 속에 나그네의 그림자도 들어 있다.
옥계폭포로 가는 산길에는 가을이 연지곤지를 찍고 있고 23일(금) 오후 4시. 나의 충북 길라잡이 함순례 시인과 함께 충청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옥계폭포(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를 찾아가는 길. 그날 하늘은 짙은 먹구름과 하얀 뭉게구름을 사이좋게 거느리고 있었다. 서편 하늘에서는 금세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질 것 같았지만 동쪽 하늘에선 따가운 가을햇살이 간간이 내리쬐기도 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박연폭포라 부르는 옥계폭포. 함순례 시인이 한번 다녀온 뒤 꿈에 자주 보인다는 옥계폭포. 난계 박연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자주 찾아와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는 옥계폭포.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30m가 넘는 폭포가 무지개빛 물보라를 일으켜, 산과 계곡이 선경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은 옥계폭포. 그날, 나그네는 대전에서 대청댐과 옥천을 거쳐 옥계폭포로 향했다. 옥계폭포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 코스모스 등이 줄지어 피어나 이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고 작은 산과 계곡에 우뚝 우뚝 선 나무들도 잎사귀에 빨강, 노랑, 갈빛을 예쁘게 찍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길이 30m에 이르는 옥계폭포, 그 아름다운 무지개빛 물보라 천국사를 뒤로 하고 티 없이 맑은 물이 촬촬촬 흐르는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자 초록빛 산장호수가 잔잔한 물살 위에 가을빛에 물드는 산 그림자를 일렁거리고 있다. 나그네가 조약돌을 하나 집어들어 그 잔잔한 산장호수 위에 물수제비를 날리자 초록빛 호숫물이 구슬이 되어 허공으로 톡톡톡 튀어올랐다가 이내 고요해진다. 산장호수를 가슴 깊숙히 품고 산길에 접어들자 온통 울긋불긋한 숲의 동굴이 이어지면서 이마가 선들해진다. 동굴숲이 진하게 뿜어내는 공기가 너무나 시원하고 달다. 이런 곳에서 오래 오래 살다보면 이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근심 걱정이 물러감은 물론 만병이 사라지면서 나이마저 점점 젊어질 것만 같다.
거센 파도소리는 바로 그 바위 뒤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에서 나고 있다. 나그네가 파도소리가 들리는 그 위태로운 절벽 쪽으로 다가서자 길이 30m가 넘는 폭포가 쏴아아 무지개빛 물보라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 이 폭포가 바로 예로부터 전국의 시인 묵객들이 수없이 찾았다는 그 옥계폭포다. 나그네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승천하는 용처럼 트림하고 있는 옥계폭포 앞에 다가서자 이내 무지개빛 물보라가 이마와 옷자락을 축축하게 적신다. 귀도 먹먹하다. 누가 이 깊은 산 위태로운 절벽 사이에 저토록 아름다운 하늘 물기둥을 세워 놓았을까. 누가 저 아름다운 무지개빛 물보라 속에 이 세상의 얼룩을 모두 지우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멀게 했을까.
기묘한 바윗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초록빛 소가 있다 깎아지른 듯한 위태로운 절벽. 그 절벽 사이에서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일곱색 물보라. 그 일곱색 물보라 사이로 세차게 떨어지는 하얀 물기둥. 그 아름다운 물기둥을 속으로 속으로 끝없이 받아들이는 초록빛 소. 저 소의 깊이는 대체 얼마나 될까. 저 소에 떨어지는 물기둥을 따라가면 거기 신선들이 사는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나그네가 넋을 놓고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데, 함순례 시인이 허리를 쿡 찌르며 턱짓을 한다. 폭포 위 쪽으로 한번 올라가보자는 투다. 함순례 시인을 따라 폭포 위에 이르자 거기에도 짧은 폭포가 하나 있고, 그 폭포 아래 기묘한 바윗틈에 초록빛 소가 하나 있다. 언뜻 보기에도 깊이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저는 이 폭포를 제 마음의 찬란한 보석으로 여기고 있어요. 마음이 울적하거나 몸이 고될 때 이 폭포를 찾으면 마음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곤 하거든요. 저는 이 폭포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이 폭포가 지금처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

이종찬(lsr)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