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렇게 느껴보세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펌)

2005. 8. 30. 오후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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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이렇게 느껴보세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
    김민수(dach) 기자   
▲ 북제주군 조천읍 다려도
ⓒ2005 김민수

하늘이 가을만큼 높아졌습니다. 하늘이 높아지면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도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늘 한결같은 색일 것 같은 바다도 가을빛으로 물들어갑니다. 그런데 사실 바다처럼 시시각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색깔을 가진 것도 드물 것입니다. 새벽미명의 바다에 서면 그 짧은 순간에도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실 가을바다의 색깔이 어떤 색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다른 계절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바다의 색깔은 그대로인데 마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섬에서 섬을 본다는 것은 남다른 느낌을 줍니다. 문득 다려도가 보고 싶어 일주도로를 타고 다려도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서니 파도도 낮잠을 자는지 고요합니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나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 이불을 끌어안고 자게 됩니다. 가을꽃들이 하나둘 피기 시작했어도 그리 가을이 실감나질 않았는데 아무 변화도 없는 듯한 바다에 서니 가을기운이 느껴집니다. 가을기운, 그것은 바다의 색깔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 조
ⓒ2005 김민수

다려도로 가는 길에 조밭이 보였습니다. 제주의 농촌은 요즘 감자심기와 당근밭 메는 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길가에는 거둔 참깨가 가을햇살에 말라가고, 당근밭에는 삼삼오오 일렬로 당근 솎아주기를 합니다. 참깨가 말라가는 풍경은 가을, 막 올라온 당근싹은 봄, 그리고 고랑을 내어 감자를 심는 밭은 여름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봄, 여름, 가을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듯한 제주입니다.

조나 참깨는 참 작습니다. 지난해 참깨는 아니고 들깨를 조금 심었다가 애를 먹었습니다. 털긴 털었는데 돌멩이들과 섞여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맸습니다. 그냥 버릴까란 생각도 들고 작은 돌멩이를 하나둘 골라내자니 세월입니다. 텃밭에서 농사짓는 흉내나 내다보니 농기구도 변변치 않아서 그럴 땐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을 이용해서 골라내고 또 골라내도 미심쩍은 들깨, 결국은 먹지도 못하고 씨앗으로 뿌려서 부지런히 깻잎을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결국은 깻잎을 다 따먹지도 못하고 올해도 부담되는 들깨를 거두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모이고 또 모여 되가 되고 말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2005 김민수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왜 뭐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꼿꼿해질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사람이지 생각하다가도 설익은 이들이 뻣뻣한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눈꼴사나워서 나도 뻣뻣해집니다.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숙이고 살아오다가 손해를 보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간혹은 억울해서 그냥 나도 그들처럼 살아가는 날이 더 많습니다.

다려도를 눈이 시리게 보고 돌아오는 길에 수련이 가득 피어 있는 연못을 만났습니다. 그 곳을 몇 번 지나갔던 곳인데 오늘에야 그 연못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곳에 내려 연못가를 살펴보니 그동안 담고 싶었던 수생식물들이 연못에 자라고 있습니다. 마름, 어리연꽃, 택사를 한 곳에서 담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항상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의 일상에 참 좋은 것들이 많은데 그걸 보지 못하고 좋은 것은 늘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 김녕방파제의 등대와 코스모스
ⓒ2005 김민수

코스모스는 추억의 꽃입니다. 신작로가 생기면서 심겨지기 시작했던 꽃, 꽃을 따서 엇갈려 꽃잎을 뜯어 공중에 날리면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오던 꽃,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빨강, 하양, 분홍색의 꽃씨를 받아 고이 보관했다 이듬해 봄에 뿌리곤 했던 꽃입니다. 이미 우리 땅에 산 세월로 보면 이제 코스모스도 우리 꽃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요? 그 이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스모스'라는 그 이름 때문에 이미 이 땅의 꽃이 되었으면서도 늘 외래종취급을 받는 것이죠.

코스모스와 같은 고향(멕시코)을 가진 백일홍의 경우나 북미가 고향인 달맞이꽃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그들이 이 땅에 뿌리내린 역사도 거의 코스모스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들은 친숙한 우리의 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달맞이꽃은 문학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기도 하죠.

코스모스는 잡초도 잘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 자랍니다. 맨땅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 그 흙을 숨쉬는 흙, 살아 있는 흙으로 만들어주는 코스모스입니다.

상상의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코스모스를 보니 외국인노동자들 생각이 납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이 땅에 와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당해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니, 외국인이라고 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초강대국 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르군요. 그들은 특별대우를 받죠.

ⓒ2005 김민수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도, 시간이 바뀌는 것도 관심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오매, 단풍이 들었건, 진수성찬이 차려진 상이 나오든 그것이 보이지 않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바다도 보고 싶고, 가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행복쪽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아직도 오는 가을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한번 쳐다보면서 심호흡을 깊게 한번, 두 번, 세 번만 반복해 보세요. 그러면 갑자기 안보이던 가을이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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