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은 유난히도 후끈하고 뜨끈뜨끈한 계절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갑작스레 특정 언론사와 재벌의 부도덕한 사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되더니, 이어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비밀 도청 테이프가 무려 270여개나 발견돼 소위 방귀께나 뀐다는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들을 숨죽이고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득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되었다는 영국인가 미국인가에서 어떤 장난기 많은 사람이 정치인들에게 “모든게 발각되었다”는 전화 한 통화 했더니 다음날 모두 튀어버렸다고 하는 우화가 연상됨은 왜일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부도덕성과 이중성에 환멸과 허탈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사태의 진전을 흥미있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최근의 사태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양상이다. 하나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므로 모든걸 속 시원하게 까발려 과거의 잘못된 폐습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는 일반 서민들의 감정과 정서에 꼭 들어맞는 주장이고, 또 하나의 흐름은 정부 기관의 불법 도청이 문제의 본질이므로 철저한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문책 그리고 재발방지에 수사의 초점을 둬야 한다는 공자님 가운데 토막같은 합리적이지만 다소 미지근한 듯한 목소리다. 아마도 後者보다는 前者의 목소리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길게 봐서는 다음 총선이나 대선때까지도) 모든 분위기를 이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우리 사회의 여론과 사회적, 정치적 Agenda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前者를 강력히 밀고 있고 또한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를 즐기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사꾼(?)들이 시류에 민감한 다소 선동적인 저널리스트들에게 정의의 사도가 되라고 암묵적으로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논리 정립과 타개의 달인인 임금님(?)께서도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부기관의 불법도청이라고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셨음에도 이 불길을 잡는데는 역부족일 것 같다. 수사주체인 검찰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일게다. 테이프의 내용은 공식적으로야 비밀이 유지되겠지만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약점을 캐내려는 본능적인 호기심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감추려 할수록 더욱 끈질기게 눈에서 눈으로, 입으로 귀로 ,“~카더라 통신‘으로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게 될 것 같다. 못마땅하고 눈에 가시 같았던 지도층 인사들의 부도덕성과 이중적인 행태는 그렇지 않아도 코너에 몰린 소위 기득권 세력들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확실한 재료인 데 이를 한번 써먹지도 않고 폐기처분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어수룩하지 않음을 저간의 사정으로 능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부도덕과 부패 청산이라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몰락을 재촉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권력이라는 게 참 묘하단다. 권력이 좀 있다 싶은 눈치면 가만히 있어도 온갖 정보를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데 즈그들이 알아서 다 물어다 준단다. 권력교체의 시기 때 눈치빠른(?) 정보통들이 갖가지 채널을 통해 새로운 권력자에게 접근하는 데 이번 테이프 내용의 일부가 아주 요긴하게 쓰여질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는 테이프 내용과 관련해 사생활 부분은 아예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선수치고 나온다. 먼 훗날을 내다본 나름대로 지혜로운 처신이리라. 두렵고 비열한 짓이지만 권력을 쥐려면 그 정도의 정보 유통 과정 (사실인 정보든 아닌 정보든 자기에게 불리한)은 극복해야 한단다. 차떼기당, 보수꼴통 그것도 모자라 元祖라는 덤터기까지, 병역기피, 그런 벽을 넘지 못해 좌절한 정치인과 집단을 익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 본질로 들어가 나는 근본적으로 테이프의 내용 공개를 절대 반대한다. 개인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다.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公人으로서 사회적인 책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얘기하는 데 일응 맞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큰일날 주장이다. 요새 연예인도 公人이라 하는 판에 사회생활 하는 사람치고 公人아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사 백번 양보해서 공인이라 해도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까발리고 국민이 알아야 할까? 내 판단의 근거는 단순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公人이라고 자처하는데 易地思之로 만약 내 사생활이 어찌어찌한 이유로 까발려진다고 생각해 보라.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가? 평범하게 살아온 나도 이런 저런 부끄럽고 지은 죄가 많아 양심이 찔리는 일이 많은데 하물며 온갖 권세와 영화를 누려온 계층인들 오죽 할까? 아무리 개인적으로 부도덕하고 부끄러운 짓을 했다 하더라도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인민재판식의 형태로 어떤 형태로든지 21세기에 출현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의 한 단면만 보고는 절대로 진실을 알 수 없음에도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일부분이 진실인 양 오판될 가능성이 너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데도 일부에서 주장하듯 내용 공개와 폭로는 일시적인 감정의 카타르시스 역할로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결국에는 국민 계층 상호간에 깊은 골만 확인한 채 허탈한 막을 내리며 아마도 우리 사회는 두고두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도 무더운 여름, 시원한 납량 특집이나 구경하려던 차에 마침 21세기 현대판 마녀 사냥이 시작될런지도 모르겠다.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불행의 씨앗을 잉태했다던가? 시원한 청량제가 될 지 예년보다 더 혹독하고 후끈한 계절이 되게 될 지 아무튼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