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을들판에 보라물결 일다

2005. 9. 27. 오후 2:08:13

글자
한라부추 자생지에서
    김민수(dach) 기자   
산부추나 한라부추나 같은 줄 알았는데 지난해 한라부추의 실체를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확연히 다른 한라부추와 산부추의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의 끝물에 만난 한라부추, 텃밭에 하얗게 피었던 부추가 꽃을 떨구고 씨앗이 여물어가고 있으니 그 곳엔 한라부추가 피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 제주의 돌은 특별하다. 그 어느 곳에 있어도 밉상스럽지 않다. 그 옛날에는 척박한 돌짝밭, 그들이 하나 둘 돌담되어 바람을 막아 생명을 살렸다.
ⓒ2005 김민수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제주시에 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하자고 꼬드겨 작년 한라부추를 만났던 그 곳을 찾았습니다. 막 피어나는 억새가 가을이 깊었음을 알려주는 가운데 얼핏 보라물결이 출렁이는 들판을 보았습니다.

아, 그 곳은 보라 물결이 일고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가꾸는 것처럼 한라부추의 보라물결이 일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한라부추의 물결, 그 물결을 걷는 동안 신선이 되어 보라물결 위를 걸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제주의 가을색. 억새의 은빛물결, 돌담밭의 초록물결, 청자색 바다의 물결, 물매화의 흰물결, 한라부추의 보라물결과 흙으로 돌아가는 흙을 닮은 갈색물결들이 출렁이며 제주의 가을을 수놓아 갑니다.

▲ 그냥 두면 이렇게 지천인 것을, 그들대로 살아가게 하면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들을 어디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2005 김민수

▲ 먼저 핀 것도 있고, 이제 피는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때론 쓰러진 것들도 있고, 못 생긴 것들도 있지만 그 모두가 어울려 보라물결을 이룬다.
ⓒ2005 김민수

▲ 그 곳은 보랏빛 바다였다. 그들 곁을 걸어가며 그들과 눈맞출 때에 나는 보랏빛 바다를 걸어가는 신선이었다.
ⓒ2005 김민수

▲ 반드시 옥토에만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다. 때론 이렇게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은 더욱 더 진한 보랏빛이다.
ⓒ2005 김민수

▲ 때론 한적한 곳에서 밀어를 나누는 것들도 있다. 홀로있어 아름답고 함께 있어 아름다운 것이 자연이다. 원래 사람도 그런 존재인데 그렇게 살지 못한다.
ⓒ2005 김민수

▲ 때로는 그늘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기도 했을 터이다. 내 삶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때로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미리 볼 수 있다면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2005 김민수

▲ 그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이별할 때 이렇게 긴 여운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05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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