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5. 19.~20)
이 기록을 내면화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리스도교 핵심 교의: 신비
신비체험: 믿음, 희망, 사랑 체험, 은총체험, 성령체험
신비의 보석: 재속성(가장 찬란한 구원의 신비가 숨겨져 있음)
사랑이신 하느님: 가슴 뭉클=사랑체험...
하느님은 '뭉클'이시다.
가슴 뭉클함으로서의 응답이 '믿음'이다.
복숭아.. 감미로운 맛의 정체는?
복숭아 나무의 생명이 놀랍게도 흙에서 이 맛을 뽑아낸다.
흙속에는 이런 복숭아맛이 없다.
유기농(인분까지).. 뿌리가 먹어 과일의 단맛이 된다.
복숭아가 가장 무르익은 상태는 썩은 상태이다.
그렇게 썩어 죽음으로 다른 생명을 살린다(썩음의 신비)
Homo Viator 여행자 영성.. 인간은 근원적으로 찾는 존재..찾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먼저 유심히 보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프란치스코가 자유로워진 건 주님을 만나서이다.
그분이 누구냐? 성소에 담긴 숙제. 찾아야 한다.
우리이 성소는 참으로 귀하다.
자기 자신을 보게 해서 하느님을 알려주신다.
자기의 상처들, 자기의 부족함을 보게 해서 그걸 보게 하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주님
서약은 쌍방계약이 아니다. 주님이 믿으신다.
상처 아픔 약점 투성이인데도 서약한다. 그걸 믿으신다.
우리는 묻어두고 피하고 했지만 그분은 믿으신다.
프란치스코가 역겹게 보는 것을 보게 하시고
포용하게 하시고 거기에 당신을 드러내셨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조차도 하느님은 당신을 보여주고 드러내시는데 쓰신다는 것.
당신 보여주심이 다양. 단 우리가 찾아야 한다.
우리 자신 보게 되고 당신 알게 되고
그분 알게 되면서 나 자신을 알게된다.
나도 내 상처를 사랑하게 된다. 치유가 된다.
보는 시선이 딱 바뀌어진다.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놀라운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린 세상에 던져진 존재-하이데거
서약하면 우리는 세상에 던져지는 존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파문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온전한 프란치스칸으로서 세상에 던져진다.
어떤 파문 일으킬 것인지, 우리에게 달려있다.
서약의 내용은 복음을 살겠다는 것
서약(voto votum)맹세의 의미
서약한 내용을 제대로 할 때 의무에서 해방된다.
내가 그분을 내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서약을 못하니 결심을 의미
서약- 봉헌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약속, 동의, 의무 지키다.=서약
서약의 대상이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다.
서약의 대상은 하느님이다. 희망을 거슬러 희망한다.
그분은 계약 맺을 필요가 없으나 당신먼저 계약 맺고자
오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매어 있기를 원하신다.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버지와 아들, 신랑와 신부, 목자와 양
하느님의 바보성
나와의 관계를 끊지 말아다오.
그분이 먼저 손을 내미신다. 그분과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누가 이 생활을 받아들이고자 찾아오게 되면...
서약생활의 원동력: 하느님.
귀하고 특별한 존재는 주님께 받아들여 주시고 그렇게 됨을 기억..
우리는 서약 통해 하느님께 매인 몸이 된다.
그분은 나에게 또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운명과 가르침이 그들의 운명과 가르침이 되었다.
특별한 관계 이기 때문에..
우린 그분을 무엇 서약했고 누구와 맺어진 관계인지 알아야 한다.
난 어디 소속이냐? 이제 그분께 온전히 속한 상태로...
서약=고백이다.
그분이 내 삶의 중심이다. 그분 가르침이 내 삶의 기준이다.
서약 통해 특별히 하느님께 속한 존재가 된다.
단순히 속하는게 아니고 특별한 방식으로 속한다.
축성되면 그것이 형태는 그대로지만 본질이 바뀌어 버린다.
축성되면 하느님의 것이 되어버린다.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축성은 성화, 거룩하게 하다. 봉헌하다. 하느님이 되게 하다.
consacrare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로 놓여지게 된다.
당신의 소유로 만들어버린다. 그분의 거룩함에 들어서며 그분과
인격적 관계 친교 안으로 들어서게 만든다.
내부적으로 그렇게 변화되게 한다. 인간이 온전히 내어 놓고 맡길때 이게 가능하다.
하느님과 온전한 친교 관계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스도 온전히 하느님의 것으로 살았다.. 인간측에서 보면 봉헌하는 삶..
우리가 서약하면 주님께 특별한 관계...
평생 축성된 삶을 살되, 서약 관계이기에 봉헌해야 할게 많다.
사도 바오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이 옷이 완전히 내 것으로 변하게 살아야 한다.
그분 옷 입고 변화되는 과정에 서약이 들어있다.
ㅅ약은 좋은 것일지라도 하느님을 내 주인으로 섬기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것은 피하든지 멀리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세례 축성을 보다 충만하게 살기 위한 것이 서약이다.
더 적극적이고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서약이다.
"그게 사명이에요..."
내가 너희 뽑은 것은 다른 민족이 너희 보고 너희 가운데 하느님이 계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프란치스코는 성사적 존재였다.
왜냐면 사람들이 그를 보면 하느님을 알 수 있었다.
서약하면 그리스도 축성받고
그리스도 삶을 살아가는거예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드러나는 것을 우리 주님은 하느님이다. 이걸 고백하는 사람이 된다.
서약통해 우리는 성사적인 존재가 된다.
세상에 던져지지만 돌로서가 아니라 서약한 프란치스코처럼 그런 존재가 된다.
서약하고나아가면 우리 공간에서 그분 드러내주는 그분 알려주는 그분 고백하는 존재가 된다.
서약통한 관계는 종속관계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이다.
종에게는 계약이 주어지고 벗에게는 권고가 주어진다.-암브로시오
구약백성에게 계명, 신약백성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서약생활... 사랑이 더 깊어진다. 자발적으로 하는 차원으로 간다. 신약시대 사랑...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은 희생요구됨.. 예수님 모습으로 닮아간다.
서약은 완덕을 위해서이다.
하느님을 더 깊이 닮고 사랑하기 위해..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려고 서약한 그리스도 충만함에 도달하게 그리스도와 닮게 하나되게
서약은 그게 깊이있고 확장되게 해준다.
그건 계명지켜서가 아니라
사랑할 때 가능하다.
완덕의 개념은 내 안에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완덕은 서약 통해 완덕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기 위한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닮을수록 거룩, 완전한 것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 커지는 만큼 그만큼 하느님을 닮은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 그 기름이 곧 사랑이다.
하느님은 선한이 악한이 모두 햇빛 내려주심.
내 사랑 키워주고
그릇 깊게 해주고
싫은 사람 포용가능하게 하고
커지면서 우리 서약 생활이 풍요로워진다.
그분은 벌이라고 말씀하실만큼
우리를 믿고 계신다.
서약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간다.
서약은
교회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교회가 된다.
이 기록을 내면화 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리스도교 핵심 교의: 신비
신비체험: 믿음, 희망, 사랑 체험, 은총체험, 성령체험
신비의 보석: 재속성(가장 찬란한 구원의 신비가 숨겨져 있음)
사랑이신 하느님: 가슴 뭉클=사랑체험...
하느님은 '뭉클'이시다.
가슴 뭉클함으로서의 응답이 '믿음'이다.
복숭아.. 감미로운 맛의 정체는?
복숭아 나무의 생명이 놀랍게도 흙에서 이 맛을 뽑아낸다.
흙속에는 이런 복숭아맛이 없다.
유기농(인분까지).. 뿌리가 먹어 과일의 단맛이 된다.
복숭아가 가장 무르익은 상태는 썩은 상태이다.
그렇게 썩어 죽음으로 다른 생명을 살린다(썩음의 신비)
Homo Viator 여행자 영성.. 인간은 근원적으로 찾는 존재..찾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먼저 유심히 보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프란치스코가 자유로워진 건 주님을 만나서이다.
그분이 누구냐? 성소에 담긴 숙제. 찾아야 한다.
우리이 성소는 참으로 귀하다.
자기 자신을 보게 해서 하느님을 알려주신다.
자기의 상처들, 자기의 부족함을 보게 해서 그걸 보게 하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주님
서약은 쌍방계약이 아니다. 주님이 믿으신다.
상처 아픔 약점 투성이인데도 서약한다. 그걸 믿으신다.
우리는 묻어두고 피하고 했지만 그분은 믿으신다.
프란치스코가 역겹게 보는 것을 보게 하시고
포용하게 하시고 거기에 당신을 드러내셨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조차도 하느님은 당신을 보여주고 드러내시는데 쓰신다는 것.
당신 보여주심이 다양. 단 우리가 찾아야 한다.
우리 자신 보게 되고 당신 알게 되고
그분 알게 되면서 나 자신을 알게된다.
나도 내 상처를 사랑하게 된다. 치유가 된다.
보는 시선이 딱 바뀌어진다.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놀라운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린 세상에 던져진 존재-하이데거
서약하면 우리는 세상에 던져지는 존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파문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온전한 프란치스칸으로서 세상에 던져진다.
어떤 파문 일으킬 것인지, 우리에게 달려있다.
서약의 내용은 복음을 살겠다는 것
서약(voto votum)맹세의 의미
서약한 내용을 제대로 할 때 의무에서 해방된다.
내가 그분을 내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서약을 못하니 결심을 의미
서약- 봉헌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약속, 동의, 의무 지키다.=서약
서약의 대상이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다.
서약의 대상은 하느님이다. 희망을 거슬러 희망한다.
그분은 계약 맺을 필요가 없으나 당신먼저 계약 맺고자
오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매어 있기를 원하신다.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버지와 아들, 신랑와 신부, 목자와 양
하느님의 바보성
나와의 관계를 끊지 말아다오.
그분이 먼저 손을 내미신다. 그분과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누가 이 생활을 받아들이고자 찾아오게 되면...
서약생활의 원동력: 하느님.
귀하고 특별한 존재는 주님께 받아들여 주시고 그렇게 됨을 기억..
우리는 서약 통해 하느님께 매인 몸이 된다.
그분은 나에게 또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운명과 가르침이 그들의 운명과 가르침이 되었다.
특별한 관계 이기 때문에..
우린 그분을 무엇 서약했고 누구와 맺어진 관계인지 알아야 한다.
난 어디 소속이냐? 이제 그분께 온전히 속한 상태로...
서약=고백이다.
그분이 내 삶의 중심이다. 그분 가르침이 내 삶의 기준이다.
서약 통해 특별히 하느님께 속한 존재가 된다.
단순히 속하는게 아니고 특별한 방식으로 속한다.
축성되면 그것이 형태는 그대로지만 본질이 바뀌어 버린다.
축성되면 하느님의 것이 되어버린다.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축성은 성화, 거룩하게 하다. 봉헌하다. 하느님이 되게 하다.
consacrare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로 놓여지게 된다.
당신의 소유로 만들어버린다. 그분의 거룩함에 들어서며 그분과
인격적 관계 친교 안으로 들어서게 만든다.
내부적으로 그렇게 변화되게 한다. 인간이 온전히 내어 놓고 맡길때 이게 가능하다.
하느님과 온전한 친교 관계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스도 온전히 하느님의 것으로 살았다.. 인간측에서 보면 봉헌하는 삶..
우리가 서약하면 주님께 특별한 관계...
평생 축성된 삶을 살되, 서약 관계이기에 봉헌해야 할게 많다.
사도 바오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이 옷이 완전히 내 것으로 변하게 살아야 한다.
그분 옷 입고 변화되는 과정에 서약이 들어있다.
ㅅ약은 좋은 것일지라도 하느님을 내 주인으로 섬기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것은 피하든지 멀리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세례 축성을 보다 충만하게 살기 위한 것이 서약이다.
더 적극적이고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서약이다.
"그게 사명이에요..."
내가 너희 뽑은 것은 다른 민족이 너희 보고 너희 가운데 하느님이 계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프란치스코는 성사적 존재였다.
왜냐면 사람들이 그를 보면 하느님을 알 수 있었다.
서약하면 그리스도 축성받고
그리스도 삶을 살아가는거예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드러나는 것을 우리 주님은 하느님이다. 이걸 고백하는 사람이 된다.
서약통해 우리는 성사적인 존재가 된다.
세상에 던져지지만 돌로서가 아니라 서약한 프란치스코처럼 그런 존재가 된다.
서약하고나아가면 우리 공간에서 그분 드러내주는 그분 알려주는 그분 고백하는 존재가 된다.
서약통한 관계는 종속관계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이다.
종에게는 계약이 주어지고 벗에게는 권고가 주어진다.-암브로시오
구약백성에게 계명, 신약백성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서약생활... 사랑이 더 깊어진다. 자발적으로 하는 차원으로 간다. 신약시대 사랑...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은 희생요구됨.. 예수님 모습으로 닮아간다.
서약은 완덕을 위해서이다.
하느님을 더 깊이 닮고 사랑하기 위해..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려고 서약한 그리스도 충만함에 도달하게 그리스도와 닮게 하나되게
서약은 그게 깊이있고 확장되게 해준다.
그건 계명지켜서가 아니라
사랑할 때 가능하다.
완덕의 개념은 내 안에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완덕은 서약 통해 완덕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기 위한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닮을수록 거룩, 완전한 것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 커지는 만큼 그만큼 하느님을 닮은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 그 기름이 곧 사랑이다.
하느님은 선한이 악한이 모두 햇빛 내려주심.
내 사랑 키워주고
그릇 깊게 해주고
싫은 사람 포용가능하게 하고
커지면서 우리 서약 생활이 풍요로워진다.
그분은 벌이라고 말씀하실만큼
우리를 믿고 계신다.
서약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간다.
서약은
교회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교회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