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호야, 나는 너를 믿는다

2004. 7. 13. 오후 1: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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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호야, 나는 너를 믿는다




    "너도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사귀다 보면 필요할 때가 있을테니
    이제부터는 용돈을 주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씀과 함께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갑자기 키가 한 뼘이나 큰 것 같았다.

    나는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몇 마리 안되는 닭에서 얻은 계란을 모아 두었다가
    파신 돈이기가 십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나는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꼭 필요할 때 쓰고 나서
    어머님께 돈이 떨어졌다고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서든 호주머니를 다시 채워 주셨다.
    어디에 썼느냐고 물으시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어머님은 왜 내가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묻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머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너를 믿으니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또 그 뒤에도 돈을 주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때마다

    나는 계속 키가 한 뼘씩이나 크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소풍이라도 갔다 오는 날이면
    캄캄한 밤에야 집에 돌아오는 것이 예사였다.
    친구들하고 동네 어귀에까지 오면
    많은 어머니들이 나와 기다리시다가
    각기 자녀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셨다.
    그러나 나의 어머님은 한 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었다.

    자연히 다른 친구들이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혼자서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어머님은 저녁 밥을 준비해 놓고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며 기다리셨다.
    내가 가면 반갑게 맞이하시며 말씀하셨다.

    "다른 엄마들이 동네 어귀까지 많이 나오셨지?
    나는 왜 안 나갔는지 아니?

    나는 너를 믿으니까."

    나는 또 한 번 키가 한 뼘이나 컸다.



    - 내가 만난 가톨릭에서 이/병/호 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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