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8일 예수 부활 대축일-요한 20,1-9

2012. 4. 8. 오후 8: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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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 예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행전 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 콜로새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요한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큰 선물로 다가오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삶을 보내는 오늘 되셨으면 합니다.

작년에 치료를 위해 치과에 갔다가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칫솔을 어느 손에 잡고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오른손으로 잡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선생님께서는 양손을, 즉 얼굴 왼쪽 부분의 치아를 닦을 때에는 오른손으로, 반대로 얼굴 오른쪽 부분의 치아를 닦을 때에는 왼손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 닦인다는 것이었지요.

그날부터 바로 왼손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40년 넘게 오른손만 사용했던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더군요. 왼손으로 닦은 오른쪽 부분의 치아는 왠지 개운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닦아도 되나?’ 라는 의심도 생깁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이 채 안 되어서 이제는 왼손과 오른손 모두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안 될 것 같았지만,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안 된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기 때문에 안 되는 것뿐입니다. 오래된 습관도 바꿀 수 있도록 우리 몸은 만들어져 있습니다. 본인의 긍정적인 의지만 있다면 분명히 바꿀 수 있는 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만든 사건인 부활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이지요. 사실 제자들을 비롯해서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부정적인 마음을 간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부정적인 마음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십니다.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만들어,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신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고개 숙이고 슬퍼하며 비통에 사로잡혀 있을까요? 아니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커다란 기쁨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 더욱 더 예수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즉, 단순히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리에서 배웠듯이, 인간은 일단 죽은 후 모두 부활합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부활로 곧바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오 복음의 ‘최후의 심판’에서 보듯이, 모든 이가 부활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불려나가지요. 그리고 의인과 악인으로 갈린 후, 악인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영원한 지옥으로 의인은 하느님이 계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부활은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위로의 기쁨이 되며, 악인에게는 피하고 싶은 괴로운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삶 안에서 우리의 사랑 실천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한다면, 세상 안에서의 모든 부정이 사라지는 참 행복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부활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할 일은 성공이 아니다. 다만 실패에도 낙심 말고 더욱 전진하는 일이다(R.스티븐슨).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실천이다

옛날 아프리카에 ‘푸푸’와 ‘무무’라는 모든 점에서 비슷한 원숭이 종이 살고 있었습니다. 몸집도 비슷했고, 체력이나 지능 역시 거의 비슷했지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종족 번식 방법이 많이 다른 것입니다.

우선 푸푸 원숭이는 1년에 5마리 정도의 많은 새끼를 낳는 반면, 무무 원숭이는 고작 2년에 1마리밖에 낳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원숭이는 무무 원숭이며, 모든 점에서 비슷했었던 푸푸 원숭이는 이미 멸종된 지 오래라고 하네요. 많이 낳은 원숭이가 아닌, 적게 낳은 원숭이 쪽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푸푸 원숭이는 많은 원숭이가 태어나도 그대로 방치했지만, 무무 원숭이는 반대로 새끼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단순히 어떠한 큰 목표를 세워놓은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정성을 다해서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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