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6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요한 18,1--19,42

2012. 4. 6. 오후 1:45:34

글자

2012년 4월 6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야 52,13ㅡ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제2독서 히브리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8,1--19,42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가수 아이유의 좌우명이 ‘나는 행운아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요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니 그러려니 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 보니, 글쎄 30번 가까이 오디션에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많은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자체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나 인기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실제로 박진영씨가 아이유에게 미안한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디션에서 탈락시켜서 그랬겠지요. 그러나 아이유는 전혀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탈락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은 행운아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자기 스스로를 보기에 ‘행운아’입니까? 아니면 ‘불행아’입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갖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들어서 스스로를 불행아로 자처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행운아인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역시 행운아인 증거가 되겠지요. 문제는 주님의 사랑을 보지 않으며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제가 새벽에 잘 일어나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형이었지요. 그런데 신부가 되어 어느 본당의 보좌신부로 발령을 받은 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든 새벽미사는 저의 담당이 된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서 자주 성당에서 이렇게 기도했지요.

“주님! 당신께서는 저의 체질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듭니다. 제발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길로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그런데 이 기도의 응답을 다음해에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지요. 굳이 새벽미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이제야 몸이 너무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은 편안하지가 않더군요. 오히려 영적으로 메마르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영적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변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이 ‘새벽을 열며’ 묵상 글입니다.

우리 모두는 큰 행운아입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오히려 채워주시는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과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보고서 힘없고 나약한 사람으로만 취급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행운아의 길이 아닌 불행아의 길만을 찾게 될 것입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오늘, 우리를 진정한 행운아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셨으면 합니다.


나의 실패와 몰락에 대해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 이외에는 없다. 내가 내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나 자신의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다(나폴레옹).


무표쿠폰 5장. 별 것도 아닌 것에 기를 쓰고 달려드는 제 모습이 우습네요.


별 것도 아닌 것에...

며칠 전, 볼링장에 갔더니 제게 쿠폰 5장을 주면서 말합니다.

“지난달에 이 볼링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치셨어요. 그래서 축하한다는 의미도 무료 게임 쿠폰 5장을 드립니다.”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3월에 운 좋게 좋은 점수가 나왔었는데 그 점수로 인해 이렇게 쿠폰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 달에도 이 쿠폰을 받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요즘 시간이 나면 무조건 볼링장에 가서 좋은 점수를 갱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루에 5게임 이상을 치면서 말이지요.

별 것도 아닌 것에 기를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게임을 치겠습니까? 겨우 1등을 하면 5게임 무료 쿠폰을 줄 뿐인데요. 만약 볼링장을 하루 가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볼 때에는 5게임 무료 쿠폰을 받은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듯한 행동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손실이 있을 때에는 얼마나 난리를 칩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정작 난리를 칠 때에는 경제적인 손해를 볼 때가 아니라 영혼의 손해를 볼 때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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