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9월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기운’이 없는지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김덕진-
여권신장 시대’·‘페미니즘 시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물론 동남 아시아나
중동지역 여성들이 받는 정도의 핍박을 대한민국 여성들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도 탄생했고, 얼마 전까지 제1야당의 대표도 여성이었다.
여성 CEO나 여성 대법관 등 흔히 말하는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사례를 기준으로 이 땅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직도 기업에서 정리해고 대상 1순위는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고, 여성은 집안일이나 하고 아이나 키우면서 남성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을 꺼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갓집에서 상주 노릇은 나이가 어려도
아들이 하는 것이고,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하는 것이 미풍양속처럼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여전히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두루 다니셨는데 마귀에 시달리던 여인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시중을 들며 예수님 일행과 동행했다는,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는 “시중을 들었다”는 구절이 상당히 불편하게 들려왔다.
이는 마치 여성들이 모두가 남성인 예수님 일행을 시중 드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양성평등의식’이 현저하게 낮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소수자이고, 차별받는 사람들이던
여성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심지어 일곱 마귀가 들었다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와도 제자처럼 동행하셨고, 당신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하셨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그렇게 소수자들,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신 분이셨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의 소수자들과 동행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