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8일 연중 제 24주간 금요일

2009. 9. 18. 오후 7:40:07

글자

2009년9월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오늘의 묵상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래아 호반의 휴양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일생일대의 변화를 체험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가운데 언제나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던 여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일곱’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이유는 없습니다.
‘강렬한 악의 세력’에 빠졌던 여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무튼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전혀 새로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 뒤로는 일편단심 예수님만 섬기며 삽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되갚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끝까지 지켜본 여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만큼 은혜로운 변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기운’이 없는지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악의 세력’을 느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총을 우리도 청해야 합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김덕진-
 

 여권신장 시대’·‘페미니즘 시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물론 동남 아시아나

중동지역 여성들이 받는 정도의 핍박을 대한민국 여성들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도 탄생했고, 얼마 전까지 제1야당의 대표도 여성이었다.

여성 CEO나 여성 대법관 등 흔히 말하는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사례를 기준으로 이 땅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직도 기업에서 정리해고 대상 1순위는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고, 여성은 집안일이나 하고 아이나 키우면서 남성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을 꺼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갓집에서 상주 노릇은 나이가 어려도

아들이 하는 것이고,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하는 것이 미풍양속처럼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여전히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두루 다니셨는데 마귀에 시달리던 여인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시중을 들며 예수님 일행과 동행했다는, 너무나 평범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는 “시중을 들었다”는 구절이 상당히 불편하게 들려왔다.

이는 마치 여성들이 모두가 남성인 예수님 일행을 시중 드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양성평등의식’이 현저하게 낮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소수자이고, 차별받는 사람들이던

여성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심지어 일곱 마귀가 들었다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와도 제자처럼 동행하셨고, 당신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하셨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그렇게 소수자들,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신 분이셨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의 소수자들과 동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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