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송영진 모세 신부

2010. 2. 26. 오전 6:46:02

글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2010. 2. 26. 금)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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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서로 용서하여라.’ 라는 가르침만 생각하고,

‘서로 용서를 청하여라.’ 라는 가르침은 잊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용서할 일만 있고, 용서 청할 일은 없겠습니까?

상처받는 일만 있고 상처 주는 일은 없겠습니까?

미워하는 일만 있고 미움 받는 일은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용서할 일만 생각하고 용서받을 일은 잊어버립니다.

남에게서 상처받은 것만 생각하고 남에게 상처 준일은 모르거나 잊어버립니다.

 

복음 말씀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이라는 말은 형제가 너에게 미움과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거든,

또는 네가 형제에게 상처와 원한을 준 일이 생각나거든, 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청하고 화해를 청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제가 군대생활 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제대할 무렵에 저보다 고참이었던 사병 하나가 와서 저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군수과 소속이고 그는 군수과의 통제를 받는 수송부 운전병이었기 때문에

누가 고참인가는 상관없이

직책상 마치 제가 상급자처럼 되어 있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하여간에 저는 모르고 있었던 일이지만 저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제대를 앞둔 시점이어서 둘 다 마음이 너그러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를 앞두고 그가 마음을 풀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는 것,

두고 두고 묵상거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신입생 때 겪었던 일입니다.

저는 당시에 같은 반 친구 하나를 싫어했습니다.

싫어할 이유도 별로 없었는데, 그냥 다 싫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한 기간이 꽤 길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싫어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군대 시절 저를 괴롭힌 선임하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그 친구를 찾아가서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너를 싫어했었다, 미안하다, 라고 하니까

그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동안 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지...

어떻든 그 다음에 저는 지도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그런 일 말고도 신학생 시절, 또 신부가 된 다음에도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일을 하고 상처를 준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해성사를 보았더라도, 언젠가는, 죽기 전에 반드시,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 세월만 흐릅니다.

그중에 어떤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려서 사과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이 어느 쪽에 있는가는... 사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세월이 약이고, 내가 잊고, 내가 용서하면 되는데,

내가 준 상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괴로운 짐으로,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파서 누워 있으면 왜 잘못한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상처를 받고 미워하면서 용서를 하지 못하는 죄와

상처를 주고 미움을 받으면서도 용서를 청하지 않는 죄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죄입니까?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서운 경고를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잘못에 대해서 이웃의 용서를 완전히 받기 전에는

결코 연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옥은 이미 끝나버린 상황이니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힘만으로는 절대로 못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연옥에서는 스스로 빚을 갚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빚을 갚을 방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갚아주거나 채권자가 채권을 포기해야 나올 수 있습니다.

 

채권자가 채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용서를 해준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그 원한을 버리고 용서를 해주어야

내가 연옥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먼저 할 일은 그에게 가서 용서를 청해야 하는데,

죽은 다음에 무슨 수로 용서를 청합니까?

그러니 연옥 기간이 한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나 전대사 덕에 조금씩 단축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죽기 전에 빨리 용서를 청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군가에게 실수로라도 상처를 준 일이 있으면 어서 가서 사과를 하라는 것입니다.

받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갚을 것을 먼저 생각하라,

용서할 일만 생각하지 말고 용서 청할 일을 먼저 생각하라,

상처 받은 일만 기억하지 말고 상처를 준 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는 흔히 남이 나에게 잘못한 일은 잘 기억하는데,

자신이 남에게 잘못한 일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때로는 끝까지 자기가 잘했다고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항상 자기만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에,

또 혹시 무의식중에 실수로라도, 아니면 잘못 판단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늘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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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을 쓰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 자막에서 본 것인데,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가 입국이 금지되었던 그 가수가

이제는 한국의 팬들이 자기를 용서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인터뷰 기사...

그 자막을 보자 반사적으로 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군대를 간다면 용서해주겠다.”

(이미 나이가 많아진 그를 한국 군대가 받아줄 것 같지는 않지만...)

 

용서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이 말로만 해서 될 일이라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말이 아니라 마음이 따라야 하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것.

특히 용서를 청하는 입장이라면 회개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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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서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에제키엘서 18장 21절-28절의 말씀입니다.

 

전에 교도소 사목을 할 때에 재소자들만을 상대로 사목했어도

가석방이나 만기출소로 나온 출소자들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당시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 저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출소자들이 찾아가면 최소한 밥값과 차비는 도와준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게 전국적으로 퍼진 소문이었는지 출소자들이 참으로 많이도 찾아왔습니다.

 

가끔은 출소자가 아닌데도 출소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한바탕 훈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출소자들에게는 최소한 하루 식사비와

전국 어디로든 갈 수 있을 정도의 차비는 보태 주었습니다.

교도소에서 막 나온 출소자들이 어떤 처지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을 도와주는 정부 기관도 있고 사회사업 단체가 있긴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몰라도 이 사회는 정말 전과자들에게 차갑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와서 직업을 구하고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살려고 해도,

그 ‘전과자’라는 기록 때문에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과 기록이 평생 따라다니면서 착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컴퓨터가 발달해서 신원조회를 금방 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를 숨기고 새롭게 살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한 번 죄를 짓고 기록에 남으면 평생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죄인이 회개를 한다면,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하느님은 과거의 잘못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만 보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건망증이 심하시고, 과거에 대한 기록 같은 것은 아예 관심도 없으신 분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분명 컴퓨터로 신원 조회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남의 죄를 기억하면서 평생 미움과 원한이라는 고통 속에서 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죄를 기억하면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회개했다면, 고해성사도 보았다면,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용서했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다 잊어야 하고, 회개했다면 자신의 죄를 잊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의인이었는데 지금은 죄를 짓고 있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과거에 착했더라도 지금 죄 속에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죄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경고입니다.

댓글 1

  • 2010년 2월 26일 오전 6:51

    '서로 용서를 청하여라'..서로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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