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2010. 2. 18. 목)

2010. 2. 18. 오전 6: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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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2010. 2. 18. 목)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예수님 뒤를’ 잘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자기 앞에 서서 가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예수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무주에서 회의가 있어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전주 쪽을 향해 고속도로로 들어섰는데,

문득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동서남북을 짐작할 수도 없었고, 낯익은 경치도 없었고,

어쩐지 자꾸 반대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고속도로에 들어섰으니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고, 돌아설 수도 없었습니다.

만일에 반대 방향으로 들어섰다면 한참을 거슬러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섰든지, 아니면 중간에 옆길로 잘못 빠졌든지 간에,

자기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말 옳은 방향인지 계속 점검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한없이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도 괜히 의심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잘 가고 있던 길을 포기하는 수도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사사건건 예수님과 충돌합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들이 보기에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분명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확신했고 예수님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끝까지 고집했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 뒤를 따르는 것이 정말 옳은 길인지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라는 의심과 고민 끝에 결국 돌아섰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순간순간 흔들린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는 것을 본 후에는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들이 가야할 길과 가야할 방향에 확신을 얻고 죽는 날까지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바리사이파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유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서기는 했는데,

앞장서 가시는 예수님을 놓치거나 한 눈을 팔면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다른 길로 잘 못 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잘못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계속 착각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서 별이 인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있다면 우리도 방향을 잃지 않고 잘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틀림없이 예수님 뒤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을 어떻게 알아보는가? 그 인도를 어떻게 따르는가?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악령을 쫓아낼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기도해야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즉 다른 데에 정신을 팔면서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받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방향을 잘 잡고 예수님의 뒤를 잘 따라가고 있다면,

그 다음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제대로 지고 있는가?

 

앞에서 걸어가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예수님 뒤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라는 말만 들으면 금방 ‘고통’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을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만 알아듣습니다.

그러면서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을 다 십자가로 생각하면서 참으려고 애를 쓰기만 합니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통이 진짜로 전부 다 십자가일까?

 

잔칫집에서 술이 떨어지자 예수님은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술이 떨어졌으니 그냥 잔치를 끝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군중을 위해서 빵의 기적을 두 번이나 행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고, 병자와 장애자를 고쳐주었고, 마귀를 쫓아냈습니다.

 

예루살렘에 기근이 닥쳐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시작되자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우리도 박해를 받는다면 일단 피하고 볼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

 

고통 중에는 마귀로부터 오는 고통이 있고, 그냥 자연재해도 있고,

자기가 죄를 지어서 받는 보속이 있고, 다른 사람의 범죄로 생기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십자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귀로부터 오는 고통이라면 당연히 쫓아내야 합니다.

자연재해라면 그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가 죄를 지어서 생긴 고통이라면,

그건 달게 받아들여야 할 보속일 뿐이고 그것을 십자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범죄로 인한 고통은 아무 의미 없는 고통이고 ‘악’입니다.

그런 일을 겪기 전에 먼저 범죄를 막는 일이 중요한데,

이미 그런 일이 생겨버렸다면... 모두가 힘을 합해 피해자를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 일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느냐? 입니다.

정말로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면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뎌야 하지만

하느님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참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권력이 독재를 한다면 그것을 막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침략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때로는 참고 견딘다는 핑계로 침묵을 지키면서 공범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모든 범죄는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것에나 십자가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됩니다.

 

성당에 냉방기가 있고, 그걸 감당할 정도의 예산이 있다면,

날도 더운 여름에 일부러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미사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본당에 승합차를 구입할 능력이 있다면 신자들을 위해서 한 대 사서 운행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먼 길을 걸어오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 극기 고행을 체험한다고 일부러 사서 고생할 수는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그건 아주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고생이 많다고 십자가라고 생색낼 것은 없습니다.

본당 신부가 본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입니다.

가정주부가 살림을 하는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입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목표로 힘들게 훈련을 하는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학생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하는 것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 십자가를 갖다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십자가라고 생색내고,

피해야 할 고통은 멍청하게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참고 견디고...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지고 갈 십자가가 따로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안 해도 되는데 이웃 사랑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제대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알아보았다면 제대로 지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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