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단식은 왜 하는가?
단식은 회개하기 위해서 합니다.
지금까지 몸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을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영혼을 생각하면서 살겠노라고 다짐하기 위해서 단식합니다.
지금까지 나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을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하느님과 이웃을 생각하면서 살겠노라고 다짐하기 위해서 단식합니다.
회개의 뜻이 없는 단식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유대교 방식의 단식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은 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서 단식했기 때문입니다.
단식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기 위해서 합니다.
지금까지 편하게 살았던 삶을 회개하면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 몸의 즐거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직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당하기 전이었으니 사도들이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도들과 신자들이 단식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식투쟁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상징적으로 굶는 것을 단식투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을 위한 단식기도” 라고 타이틀을 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먹는 일이 인간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니까
먹는 일을 멈추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뜻입니다.
“단식투쟁 한다고 요란하게 소문만 내고 실제로 죽는 것은 못 보았다.”
라고 빈정거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식투쟁을 하다가 실제로 죽은 경우가 있습니다.
1980년도의 광주 항쟁으로 구속된 J대 총학생회장이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당시 정권은 정말 징그럽고 모진 정권입니다.)
무슨 요구를 내걸고 걸핏하면 단식투쟁한다고 선언하고,
시일이 지나면 슬그머니 중단하는 모습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쌩쇼를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다면 단식투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꼭 ‘너나 잘해라.’ 식의 반응을 듣게 되는데,
제가 목숨을 건 단식을 한 적이 없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봅니다.
단식의 의미가 회개에 있다고 한다면
단식한 다음에는 회개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식한 뒤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건 단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도 않고서 굶기만 한다면 그건 하느님을 속이려고 하는 짓입니다.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 유지 장치를 끊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느님께 내 목숨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면 단식한다고 생색낼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을 단식일로 정했습니다.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한 끼.
그런데 예외 조항도 많고 면제되는 사람도 많아서
과연 몇 명이나 그 규정에 해당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한 끼 굶기만 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굶어서 절약되는 음식 값은 어떻게 합니까?
굶은 만큼 나중에 더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만일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단식을 안 한 것보다 더 나쁜 일이고)
절약된 음식 값은 하느님께 봉헌하든지
불우 이웃 돕기에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회개의 마무리가 되는 것이고.
사실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의 단식은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그것만 하라는 규정이 아니라 아무리 못해도 그것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필요하다면 자기가 정해서 더 해야 합니다.
회개가 목적이니, 회개를 위해서 언제든지 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는데도 일부러 굶는 것, 그것이 대단한 희생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단식할 수 있다는 것은 먹을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단식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또 병에 걸려서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대로 단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일입니다.
어디 단식뿐이겠습니까?
사순절이라고 뭔가 특별한 극기 고행을 하는 것은 할 만 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시하거나 생색낼 것이 없습니다. 그런 짓은 삼가야 합니다.
제1독서 말씀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이곳에서 지내면서,
짧은 거리를 가더라도 전동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노인들이
그 불편한 몸으로 날마다 매일 미사 참례를 하는 것을 봅니다.
정말로, 정말로... 게으른 사람들은 개과천선해야 합니다.
신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저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분들은 건강이나 나이만 따지면 단식과 금육이 모두 면제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지극 정성으로 그런 것들을 다 지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어느 본당이든지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한다면,
건강하고 젊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회개하라는 기간이지 생색내라는 기간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