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루카 1,57-66.80

2012. 6. 24. 오전 8: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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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제2독서 사도행전 13,22ㄴ-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제게 새벽을 열며 묵상 글에 대한 질문을 던지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하고, 그 묵상을 토대로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그 형제님께서는 저의 묵상시간 쓰는 시간이 짧아서인지 묵상 글에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공적인 글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성의 없이 묵상 글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바에는 글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지요.

솔직히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역시 제가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글 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렸을 때부터 글 잘 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의 없다는 말에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글을 쓰는 시간이 짧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묵상 글을 쓰기 위한 소재들, 즉 일상의 삶에서 생각하고 묵상했던 것들을 저는 수시로 컴퓨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좋은 글들도 꼼꼼히 정리하면서 묵상 글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남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하면서 정리를 한 뒤, 짧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묵상 글을 쓰는 시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저의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발견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편한 데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맞이하여 오늘 복음은 즈카르야가 주님의 천사로부터 세례자 요한 잉태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편한 데로 인간의 관점으로만 생각하여 받아들이지요. 즉, 나이든 자신과 아내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 하느님께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이려던 그 아둔함이 그를 말 못하는 벙어리로 만들지요.

이 즈카르야의 모습이 우리에게 쉽게 발견됩니다. 하느님의 계획과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들. 항상 내가 기준이 되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들. 즈카르야의 모습인 줄로만 알았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요한. 그의 탄생일인 오늘을 보내면서 우리는 과연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안에서만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를 주고 한 개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홉 개를 주고 더 주지 못하는 한 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사랑이다.(권소연)


어제 자전거를 타다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은옥씨의 노래 '윙윙윙' 잘 들었습니다.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

어떤 책에서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식물은 움직이면 죽고, 동물은 가만있으면 죽는다.’

잘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러한 큰 차이점이 있었구나 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즉, 어떤 존재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가질 수만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와 너라는 서로 다른 존재가 똑같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나와 같지 않아!’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요?

바로 상대방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의 삶의 방식 역시 남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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