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생활성서사- 순교자의 피, 흘러흘러...

2004. 10. 9. 오후 12:02:22

글자
순교자의 피, 흘러흘러...
부산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의 묘

생곡동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면 됩니다.” 순교자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의 묘소를 찾아가는데,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란다. 성지를 찾아가는데 쓰레기 매립장이라니, 뭔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조씨 형제묘를 찾아가자면, “생곡동 쓰레기 매립장이 어디냐”고 물으면 된다. 쓰레기 매립장이 현재 공사 중이지만 오랫동안 반대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생곡동 쓰레기 매립장이라면 부산사람은 대개 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찾아간 마을 맨 뒤편에 성지 조씨 형제묘는 있었다. 낙동강 하구언을 지나 진해와 김해공항으로 가는 길로 가다보면 녹산수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가다보면 왼편으로 생곡 쓰레기 매립장 조성공사가 한창인 곳이 보인다. 그쪽을 향해 왼쪽으로 꺾어 마을로 들어가면 된다. 부산에 계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 그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길이다. 혼자 순례를 떠날 때는 이런저런 성가부터 챙겨서 내내 그걸 들으며 가거나, 미사 녹음된 것을 들으며 가곤 하는데, 오늘은 다르다. 운전해주시는 분이 발라드풍의 유행가를 틀어놓고 가니, 말 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노래를 할 줄 모른다. 안 하니까 점점 더 못해진다. 어쩌면 음악을 할 줄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양손이 분리가 되지 않는다. 오른손과 왼손이 함께 노니 기타를 아무리 배우려고 해도 되지가 않는다. 게다가 손과 발이 또 분리되지 않는다. 오르간을 배워보려고 그토록 애썼지만 건반을 누르는 손과 페달을 밟는 발이 같은 박자로 노니, 오르간이 제대로 소리를 낼 리가 없다. 여기에는 어쩌면 내 삶의 어떤 본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오른손과 왼손이, 손과 발이 따로 놀지 못하는 일체형의 불구(不具). 그래서 어려서부터 정신과 육체의 일원론을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헛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차는 어느새 성지로 향하는 좁은 마을길로 들어서고 있다. 성지 입구에는 배문한(도미니코) 신부의 생가가 있다. 순례객을 위해 개방된 곳이다. 생가 안으로 들어서니 오른편에 작은 분수가 있고, 집안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듯 잘 손질이 되어 있다. 거기서 뭔가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은 비석 하나를 만났다. ‘순교의 피가 흘러 흘러 나를 신자 되게 하고, 순교의 한이 맺혀 맺혀 나를 사제 되게 하였도다.

1989년 9월.’ 고 배문한 신부의 말을 적은 비문이다. 비석에는 배문한 사제와 그 집안의 내력이 적여 있다. 1984년 수원가톨릭대 학장으로 재임 중 8월 5일 삼척 동해안에서 익사 직전의 교우 3명을 구출하고 선종, 8월 8일 본명 축일에 수원교구장으로 안장했다는 내용이다. 옆에는 한옥을 개조한 강당이 있어서 미사를 집전할 수도 있게 되어 있는데, 방안의 벽장에는 제의 같은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성지로 오르기도 전에 이미 조씨 형제묘와 배문한 신부 가문 사이에 얽힌 천주교의 숙명적인 인연이 느껴졌다.

언덕길을 따라 성지로 오르면, 우람하게 가운데가 뚫린 돌 십자가가 암반 위에 솟아올라 있고 그 아래에 두 형제분의 묘소가 있다. 그 크기가 범상치 않다. ‘오, 주님 따라 피어난 순교자의 꽃이여. 피어나라 온 누리에 가득히’라고 새긴 글이 따갑게 가슴에 와 꽂힌다. 묘소 앞은 넓은 잔디밭이고 거기 느티나무가 우람하다. 그것을 돌아가며 울타리를 세우듯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서 세운 십자가의 길이 둘러싸고 있다. 최봉자(레지나) 수녀가 조각하고 하안성당 반석회에서 세운 조형물은 철판에 글자를 새기고 아크릴 조각을 했다.

김해 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01년 이 지역으로 유배된 이학규에 의해서였다.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은 이가환의 생질이었다. 이가환은 이 벽과의 논쟁 이후 한때 천주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천주교를 배척하는 내용의 ‘경세가(警世歌)’를 지어 전파하는 등 적극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였으나 반대세력에 몰려 결국 체포되어 옥사했다. 이가환의 사위였던 이학규는 1801년 신유박해를 맞아 전라도 능주(전남 화순)로 유배된다.

그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서울로 소환되어 다시 옥에 갇혔다가 결국 24년간 김해에서 긴 유배생활을 보내게 된다. 이 유배생활이 바로 천주교의 전래로 이어졌으니, 이것 또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호가 낙하(洛下)인 그에게는 국문학에서 높이 평가하는 문집이 많은데, 김해로 유배 간 24년 동안 지어진 것들이니 그의 유배생활은 우리 문화의 곳곳에 족적을 남긴 셈이다. 이학규는 유배생활 동안 이 지방의 양반에서 하층민까지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실학자로서 그의 저술 또한 역사, 지리에서 수학, 농학에 이르기까지 박학한 학풍을 보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천주교의 씨앗을 뿌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뿌려진 씨앗이 자라, 병인박해 때에 이 지방에서도 순교자를 낳게 된다. 1866년 대원군에 의해 몇 달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9명과 8천 여 명의 교우가 순교하는 박해였다.이때 장엄하게 순교하는 분들이 바로 창녕 조씨 김해파 묘우당 6대손으로 조대연의 5형제 중 둘째인 석빈과 셋째인 석증이다.

이들은 고천(김해시 삼방동) 출신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덕도(부산시 강동동)에 살면서 신앙생활과 전교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박해의 칼바람 속에 잡혀서 동래 아문으로 끌려간 이들은 심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자 관장은 먼저 형 조석빈을 참수하고 동생 석증에게 배교를 강요하였다. 형의 죽음을 보고도 오히려 ‘형님의 목에 십자가 꽃이 피었다’면서 흔들림이 없던 그도 끝내 굽히지 않고 형을 따라 순교의 화관을 받았다. 형제가 다 목이 잘리는 ‘참수형’이었다(두 순교자의 이름과 몇째 형제인지에 관해 여러 성지관련 글들이 서로 다르게 쓰여 있어서, 여기에서는 부산교회사연구소의 자료에 따랐다).

이 순교에 이어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과 위안이 된다. 이들의 시신을 조씨 선산에 매장하려 하였으나 문중이 반대하고 일어섰다. 사학죄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배정문이 자신의 집 언덕에 묻어주게 된다. 그후 대대로 묘소를 보살펴 온 배씨 집안에는 이들의 순교사실이 입으로 전해져왔다. 배정문은 바로 1994년 동해안 삼척 앞바다에서 익사 직전의 사람을 구하다 스스로 목숨을 잃은, 수원가톨릭대 학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배문한 신부의 증조부가 된다.

이제야 ‘순교의 피가 흘러 흘러 나를 신자 되게 하고, 순교의 한이 맺혀 맺혀 나를 사제 되게 하였도다’는 기념비의 깊은 뜻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찬규 신부와 김옥희 수녀가 1978년 이곳을 답사한 후 범일성당에서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순례를 하면서 조씨 형제묘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1985년 김해성당 청년회의 조사로 이들 순교자는 조대연의 5형제 중 셋째 석증과 넷째 석정으로 알려져왔으나, 그후 후손들의 증언과 족보를 확인한 결과 처형당한 사람은 둘째인 석빈과 셋째인 석증으로 밝혀졌다.

묘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을 위하여 1989년 6월 이틀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졌고, 출토된 유골들은 부산대학교 치의학교실에 의뢰하여 감정을 마쳤다. 그후 1995년 1월부터 진입로를 만들고 주변을 정리하여 5월 29일 이갑수 주교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1998년 8월에는 순교자묘 아래에 있는 배문한 신부의 생가를 손질하여 순례자들을 위한 강당과 쉴 곳을 마련하게 된다. 충북 농촌진흥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용배(미카엘) 씨의 홈페이지에는 배문한 신부를 그리워하는 ‘도미니꼬 사제’라는 마음 절절한 시가 한편 있다.

한식이 지나
이맘때 되면
교동집 화단에 심은
장미가 생각난다
도미니꼬 배문한 사제가
<우르바노> 신학교로 떠나며
꽃나무와 함께
진한 우정을 심었는데
그 꽃이 여러 해 피고 지다
우리 집도, 화단도,
사제 모습도
이제는 한줌 추억 속으로
숨어버렸다
동해 바다 삼척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영혼의 세계로 돌아간 사제
평생 사랑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밖에 모르던,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룬
도미니꼬 배문한 사제
햇볕 화사한 한식 날
온종일 빈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럴 리야,
정말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천국 소인이 찍힌
도미니꼬 사제의 사연을 기다려 본다.

댓글 1

  • 2004년 10월 13일 오전 12:31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자유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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