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행복하겠다는 약속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박상묵 단장 부부

어릴 적, “군인 아저씨께”라고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참 많이도 썼었다. 나라를 튼튼히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얼굴은 몰라도 보고 싶다고, 주저리 주저리 골이 넓게 그어진 누런 편지지를 빼곡하게 채웠었다. 그때의 어린 소녀가 지녔던 ‘군인 아저씨’에 대한 이미지는 다정한 큰오빠 같기도 했고 편안한 삼촌 같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이미지 대신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군인을 그리게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취재가 있던 날도 그 이미지 때문에 잔뜩 긴장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정문에 위병 근무를 서고 있는 사병들을 보면서 소녀 적 이미지가 다시 되살아났고 더 나아가 사랑스런 남동생을 지켜보는 듯한 애틋함이 흘러나왔다. 게다가 소박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 일행을 맞이해준 그를 만나는 순간 괜한 긴장을 했다는 걸 알았다.
“최선을 다했는가? 정성을 더했는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했는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짓는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며 이 세 가지 질문에 자문자답해본다는 박상묵(클레멘스?0) 준장. 신앙인으로서는 내세울 것이 없다며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던 그였지만 그가 슬슬 풀어내놓는 이야기에는 그의 어깨 위에 달린 별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운 삶과 신앙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가, 때로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하늘을 나는 파일럿을 꿈꾸면서부터 하느님과의 약속이 시작되었다.
공군사관학교에 합격만 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일을 해보리라 했던 철없던 시절, 그 조건부 약속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한 신앙인으로서 스스로가 지켜가야 할 삶의 원칙이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감사하며 더불어 사는 모든 이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에 헌신하게 해주소서. 참 군인이며 전투조종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을 참된 용기를 주소서.
아내와 나는 진정한 하나이며 소중한 사랑의 공동체임을 알고 함께 기도하며 봉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마침내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그는 자신의 사명서인 이 기도문의 내용처럼 자신과 더불어 사는 모든 이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로 이런 마음이 가정과 부대에서 자연스레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던가 보다.
그를 아는 이들이 <생활성서>에 적극적으로 그의 정보(?)를 제공해주었을 정도이니. 아내 김현미(벨라뎃다51) 씨와의 만남 역시 이웃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가톨릭 동아리 회장이었던 김현미 씨는 군종신부이기도 했던 동아리 지도신부를 만나기 위해 자주 공군사관학교를 찾아가곤 했다.
그곳에 갈 때면 성당 안의 지저분한 곳을 남모르게 정리도 하고 매주마다 제대 앞에 꽃을 꽂아놓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자 그 꽃을 꽂아놓는 이가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했던 박 준장은 어느 날 김 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7년 간의 사귐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웃과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뿐만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마냥 동조하고 싶지 않은, 나름대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픈 마음 역시 일치했다.
결혼 전 남부럽지 않게 약혼식을 올려주고자 했던 양가 부모들의 계획과는 달리 조용한 남해 어느 바닷가에서 그들 스스로의 봉급으로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작은 호롱불빛 아래 모여든 물고기와 풀벌레들에 싸여 약혼식을 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순수하고 소박했던 약혼식의 기억은 지금도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아내 김 씨는 그때 박 준장이 했던 약속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앙 안에서 잘 살아가자.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고 바른 모습으로 살자. 전투조종사의 길을 선택했으니 나라를 위해 언제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굳은 마음으로 주검 위에 조용히 백합을 던져주라.” 그와 함께라면 어떤 것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군인의 아내라는 길은 김 씨에게 결코 쉬운 삶이 아니었다. 남편의 소임지를 따라 스무 번이 넘는 이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적응은 항상 어려웠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편의 비행이 있을 때마다 두근거리고 초조해지는 마음이었다.
비행기 이륙에서부터 착륙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은…. 말을 하던 김 씨의 눈시울이 빨개지며 눈물이 맺힌다. 김 씨는 그 시간들을 통해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기자가 그의 관사에서 보았던 성모상 앞에 놓인 닳고 닳은 9일기도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편이 소위일 때는 남편과 편대원을 위해 기도하게 되더군요. 그러다 대대장이 되자 남편과 대대원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이제 단장이 되니 사병들, 조종사들, 이곳 장병들 전부는 물론이고 그들 가족들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하게 돼요.
점점 기도 대상의 범위가 넓어져요.” 아내의 심적 고생을 잘 알고 있던 남편 박 준장이 결혼 7년째 되던 어느 날 그에게 이런 말을 하더란다. “당신도 나도 함께 행복해져야 하는데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군인의 길을 그만 두겠소”라고. 그때 김 씨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결혼 전 그와의 약속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고 비로소 마음을 바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역시 아닌 것은 아니라는 확고한 주체성이 필요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으로 인해 가톨릭교회가 욕먹는 일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가족으로 인해 어떤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행여 누군가 내가 보기 싫어서 성당을 안 나가겠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것이죠.” 군인의 아내로서 신앙인으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