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생활 성서사 - 잘 먹고 잘 살고 싶은가

2004. 10. 9. 오전 11:59:21

글자
특집: 웰빙 유감


잘 먹고 잘 살고 싶은가

1992년 봄이었을 것이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백성들 힘으로 사라진 우리 밀밭을 살리자고 출자금을 모은다는 신문기사를 감동스럽게 읽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즐겨 먹는 빵, 과자, 라면, 자장면, 햄버거, 피자 따위를 만드는 밀가루가 100퍼센트 수입 밀가루라는 기사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다. 아비로서 참 부끄러웠다. 우리 아이들이 즐겨 먹는 모든 밀가루 제품이 벌레도 먹지 않는, 농약과 방부제 투성이 더러운 수입밀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음식이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생산했는지, 그리고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고 아무 거나 사 먹인 ‘무식한’ 아버지였던 것이다. 살림살이 쪼들려도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만큼은 사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이들이 아무리 먹고 싶다고 해도 사주어야 할 것이 있고, 사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신문기사를 읽고 난 뒤, 나는 우리밀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리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앞으로 농사를 짓거나 농민운동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신문,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가리지 않고 농업과 농촌 문제에 저절로 마음을 쏟게 되었다. 그래서 1996년 2월 가톨릭농민회에서 일하게 되었고, 처음 맡았던 일이 우리 밀밭을 살려 우리밀을 지키는 일이었다. 가톨릭농민회 일꾼으로 산 지 벌써 9년 남짓 되고 보니 삶이란 자기가 그린 그림대로 흘러가는구나 싶다.

내가 왜 웰빙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살아온 이야기부터 하는가 하면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잘못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웰빙이란 쉽게 말하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인데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프다.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백성들 힘으로 사라진 우리 밀밭을 살려냈듯이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웰빙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도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 웰빙을 팔아먹고 있으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웰빙 푸드, 웰빙 아파트, 웰빙 주택, 웰빙 오리고기 가든, 웰빙 의류, 웰빙 생리대, 웰빙 체조, 웰빙 수면법, 웰빙 다이어트, 웰빙 투어, 웰빙 식품, 웰빙 식당 따위가 줄을 이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웰빙이라고 해야 상품이 팔리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앞으로 웰빙 소주, 웰빙 담배까지 나오지 않겠는가. 웰빙이라고 해야 잘 팔리니까 말이다. 잘 먹고 잘 살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혼자 힘으로 절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길로 갈 수 있을까 고민도 함께하고 실천도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는 100만 명에 가까운 청년 실업자가 있고, 카드 빚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불안한가. 정규직이라 해도 늘 구조조정에 떨고 있으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정한 웰빙이란 가난한 사람들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자연과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많은 사람만이 웰빙을 누릴 수 있다. 그이들은 모든 문제를 돈으로 풀기 때문이다. ‘먹는 물’ 하면 수돗물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 먹는 ‘생수’를 생각한다. 그렇지, 돈만 있으면 프랑스산 물도, 칠레산 포도도, 쿠바산 커피도 뭐든지 사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잘못된 웰빙 바람은 결국 내가 편하게 살자고 자연을 파괴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웰빙이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게 아닐까. 그래서 두 가지만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더구나 승용차는 도시 사람들한테 필요한 게 아니다. 농촌 사람들한테 가끔 필요한 것이다.

...(하략)

댓글 2

  • 2004년 10월 9일 오후 4:15

    "잘먹고 잘살아라" : 조소/경멸의 말에서 축복의 뜻으로 의미 전환?

  • 2004년 10월 9일 오후 5:41

    며칠전 투우머로우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경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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