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흔적

2005. 1. 7. 오후 10:32:12

글자
    딸들을 하나씩 시집보내면서 줄어드는 몸무게를
    어머니의 몫이라 당연히 여기던 10년 전 겨울,
    나는 정동의 고려병원으로부터 면담요청을 받았다.

    소화불량이려니 하고 소화제만 드시던 어머니는 구토증세가 보이자
    친구분의 권유로 내시경을 받으셨는데, 보호자를 데려오라는 말에
    남편은 없고 큰 여식만 있다며 망설이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감기 때문에 면담을 다음날로 미루고
    그나마도 위세를 부리며 병원에 갔었다.
    그러나 ‘위암’이라는 아득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어머니의 생사가 달린 문제임을 깨달았다.

    수술하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말에도
    나는 수술비 걱정을 안고 병원문을 나섰다.

    수술 한 번이면 끝나는 것을
    주위에서 암은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을 핑계로
    어머니를 차가운 입원실에 홀로 밤을 지새우게 하고
    연신 원무과에 병원비 체크만 하고 다녔다.

    유일하게 남은 양심을 지키는 일은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기도원에 모셔 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창 모서리를 붙잡고 기도하시며
    “저기 봉사하는 사람들 말이 여기서 열심히 기도하고 병이 나았대.
    나도 기도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기도원에 얼굴만 내밀면 책임을 다한 거라 생각했고
    깊은 밤 홀로 기도하실 땐 몰려오는 잠으로 짜증스러워했다.

    병이 악화되자 다시 병원으로 옮겨진 어머니는 의사의 가운을 붙들며
    “막내아들 중학교 졸업식은 볼 수 있겠지요?” 라고 재차 물으셨다.

    처음 진단시 수술만 했더라면 어머니의 평생 소원이셨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졸업식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퇴원을 하기 위해 어머니의 가냘픈 몸을 등에업자 새털처럼 가벼웠다.
    순간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려 어머니의 손등으로 떨어졌다.

    엄마! 왜 울어?
    우리 딸한테 미안해서 어쩐다니! 엄마는 너 업어 주지도 못했는데 우리 딸이 업어 주네” 하시며 고개를 떨군 채 소리없이 우셨다.
    난 그때 처음으로 내가 아들이 아닌 것을 후회했다.
    귀한 아들 하나 낳고서야 처음 미역국을 드셨다는 어머니는

    호강 한번 못하고 딸들에게 누를 끼칠까
    고통을 참기 위해 가슴만 치시다가
    진통제 한번 못 쓰고 비 새는 천장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합장도 못 해 드리고 벽제로 가는 날,
    나는 엎드려 통곡했다.
    이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다시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서
    지금처럼 ‘아들이라면’하는 구차한 변명 않고
    당당한 어머니의 딸로서 효도할 것이라고.

    한 줌의 재로 변한 어머니의 흔적을 난 아직도 가슴에서 지울 수 없다.
    저의 이 씻을 수 없는 후회의 통곡을 듣고 계시나요. 어머니!

    김영선 / 서울 금천구 독산본동

댓글 3

  • 2005년 1월 8일 오전 12:38

    못다한 사랑을 다시 태여나도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서 당당히 효도하겠다는 그 말 정말 공감이 감니다.

  • 2005년 1월 15일 오후 11:52

    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살아계실때 할수있는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님 또용서 하세요!!!

  • 2005년 1월 21일 오후 10:20

    어머니 보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르.... 자식들 위해서 희생만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또한 그렇지만 시집와서 더 철이든 지금 더 잘 해 드려야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자유로운 이야기

목록 전체보기 →